[이후남의 영화몽상] 초보 초능력자에게 필요한 것

하루아침에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렸을 때라면 좋아라 했을지 모르겠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부담감이 몰려온다. 보고 들은 게 많은 탓이다. 이를테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명대사가 알려준 대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건 기본. 일상에 소소하게 도움 되는 정도라면 몰라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보듯 인류를 구하고 우주를 구할 수준의 능력이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커질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적어도 ‘하이파이브’의 초보 초능력자들을 보면서는 잠시 잊었다. 이들에게 초능력이 생긴 건 누군가의 각기 다른 장기를 이식받으면서. 다시 말해 장기 이식을 받아야 할 만큼 건강이 나빴다는 얘기다. 아버지가 태권도장을 하는 소녀 박완서(이재인)가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가파른 길에서 날듯이 달리는 모습은 그래서 더 쾌감을 준다. 심장이 안 좋아 학교를 쉬어야 했고, 딸이 달라진 줄 모르는 아버지의 과보호를 여전히 받아야 하고, 이래저래 친구 하나 없다는 아이의 놀랍고 당찬 순간이다.
![영화 ‘하이파이브’. [사진 NEW]](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17/joongang/20250617001424034kbra.jpg)
친구가 없어 보이는 건 작가 지망생 박지성(안재홍)과 겉멋 잔뜩 든 백수 황기동(유아인)도 마찬가지. 두 청년이 만나자마자 툭탁대는 모습은 온라인에 흔히 벌어지는 댓글 싸움의 실사판 같다. 이들이 혹여 인류를 구원하는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럼에도 상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외면 대신 손을 뻗으며 한 팀이 되어 간다.
손을 잡는다는 것, 동료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의 초보 초능력자들에게 의미가 작지 않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손을 잡는 것은 김선녀(라미란)가 그 자신도 몰랐던 초능력을 발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은 유산균 음료 등을 냉장 카트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프레시 매니저’. 쉽게 말 못할 그만의 사연이 있음에도, 두 청년에 비하면 성실하고 살가운 생활인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한국 영화의 수퍼 히어로는 나왔다 하면 관객을 몰고 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작진도 이를 모르지 않을 터. 수퍼 히어로보다 소시민에 가까운 이들이 초능력자가 된 덕분에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각자의 캐릭터와 이를 관객에게 드러내는 방식은 재미를 준다. 그렇다고 이후 전개와 결말까지 전형성을 벗어나는 건 아니다. 창작물의 클리셰를 익히 아는 작가 지망생 박지성의 예상대로, 적은 또 다른 초능력자. 사이비 교주 서영춘(신구·박진영)은 남의 생명과 다른 초능력까지 탐하는 점에서 철저한 악당으로 그려진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탐나는 능력은 허약선(김희원)이 공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남들 모르게 발휘하는 치유의 능력. 다친 사람을 낫게 하면서 그 자신도 고통을 느끼지만, 다행히 생수를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회복이 된다는 설정이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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