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사이에서 퍼지는 집안일 외주화
[한지형, 편윤서, 홍서연, 한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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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대학가 원룸에 분리수거 대행업체용 봉투가 걸려있다. |
| ⓒ 편윤서 |
이는 비단 A씨에게 한정하는 사례가 아니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대학가 원룸촌에는 건물마다 커다란 봉지가 문고리에 걸려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대행업체의 수거용 봉지다. 집 앞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업체가 대신 버려준다.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구분 없이 전용 봉투에 담아 배출하기만 하면 된다. 분리수거뿐만이 아니다. 문 앞에 내놓으면 빨래를 대신 해주거나 청소까지 해주는 업체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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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링> 제공 자료 재구성 |
| ⓒ 편윤서 |
20대 사이에서 집안일을 업체에 맡기는 '집안일 외주화' 현상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3년 조사한 <시간 절약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수준>을 살펴보면, '나는 요즘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에 대해 관심이 간다'고 답한 비율이 20대에서 64.8%로 가장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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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절약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수준 |
| ⓒ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
가사대행 서비스 사용 이유로 '시간 절약', '집안일을 할 시간을 줄이고 개인적인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와 '주거 공간 특성상 서비스를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서' 등이 주를 이루었다. 즉, 좁은 원룸에서 하기 어려운 집안일에 들어갈 시간을 줄이고, 개인 역량을 기르기 위해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얼핏 서비스를 이용하는 20대 청년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 아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20대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 학업 병행 등으로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악화일로인 취업 경쟁의 현장에 내던져진 20대 청년들은 자기 계발, 스펙 쌓기, 취업 준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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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 중인 대학생 P씨의 일정표 |
| ⓒ 편윤서 |
A씨는 "친구들은 자신의 이력과 역량을 기르기 위해 바쁘다. 자연스레 집안일이 뒷순위가 된다"라고 말했다. 기본 삶을 꾸리는 데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생산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미룬 집안일이 불러오는 우울감과 삶의 질 저하
이렇게 '내 미래를 위해' 뒤로 미룬 가사 노동은 악순환을 불러온다. 자기 삶의 터전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집을 정돈하는 기본적인 가사 노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과 우울감이 크다. A씨는 인터뷰에서 "처음에 '나는 이런 가사 노동도 못 할 정도로 생활력이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울감이 심해지자, 집안일 외주화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의외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한 임상심리전문가는 불안한 취업 시장에서 청년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사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작은 집일수록 쉽게 지저분해 보이고, 더러워진 집은 청년들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내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곧 집안일의 외주화로 이어졌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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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 |
| ⓒ Pexels 이미지 |
인터뷰에 응했던 A씨는 학업, 아르바이트, 취업준비 일정으로 꽉찬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이는 비단 A씨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제각기 바쁜 삶을 살아가는 600만 명의 대학생 A씨가 있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20대 청년들의 삶에서 집안일 외주화는 최소한의 여유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분초사회', '시성비' 등 시간과 관련한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어느덧 돈보다 '시간'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자원이 된 것이다. 이는 유독 20대의 목을 거세게 옥죄기 시작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 캥거루족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등 모든 것들이 모여 '나이를 더 먹기 전까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20대 청년들은 시간으로부터 쫓길 수밖에 없다.
고학점과 칼취업, 그리고 독립까지. 사회가 20대 청년들에게 바라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을 해내기엔 그들에게 24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이 단순히 게을러서 가사 노동을 대행업체에 맡기는 것이 아니다. 가사 노동을 책임질 심적 여유와 물리적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20대 청년 사이에서 일어나는 '집안일 외주화'는 분초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20대가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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