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와 음악가, 행위미술가와 시민이 함께 빚어낸 '행복한 몸짓'

이혁발 2025. 6. 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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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안동서 열린 현대무용공연... 새로운 해석의 사자춤과 발레, 개성 넘치는 시민들 몸짓

[이혁발 기자]

몰아 상태에서의 몸짓, 춤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완전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의 만끽이다.

지난 14일 17시, 경북 안동이라는 소도시 소극장에서 펼쳐진 현대무용극. 객석은 꽉 찼고, 관객 반응도 뜨거웠다.
 사자탈 속에는 손영민 무용수, 북을 치며 사자와 노는 권누리 풍물가
ⓒ 이혁발
단 한 번의 초연 공연인데도 이렇게 관람객이 많은 온 이유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안동에 눌러앉아 매년 한 작품 이상씩 현대무용의 매력을 지속해서 전파한 손영민 무용가 덕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작품 <인간의 조건>에서 그는 기획, 안무, 출연까지 도맡았다. 그의 역량과 열정이 만들어낸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전통과 대립, 사자탈과 두 남자
 두 남자가 갈등을 넘어 화합의 장으로 넘어가려는 장면이다.
ⓒ 연비무용단
공연 1부는 사자탈을 매개로 무용가(손영민)와 행위미술가, 북 치는 풍물가(권누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통 사자춤의 재현이 아니다. 사자탈은 매개일 뿐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며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나이 든 남자와 전통적인 가치를 이어가고, 시대의 틀을 받아들이자는 젊은 남자와의 대립, 갈등한 후 화합하고 함께 손을 맞잡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공연에서 사자탈을 가지고 추는 5분간의 독무는 사자춤의 독특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자체 주문 제작한 사자탈은 중국과 일본과는 당연히 다르고 국내의 사자탈과도 다르다. 무서운듯하면서도 친근하고, 근엄하면서도 애교스러움을 장착한 사자탈 독무는 세계 유수 공연장에 나가면 인기를 무척 끌 거라 예상된다. K-무용의 위상을 높일 것 같다.
 사자탈을 쓴 무용수와 사자탈이라는 껍질보다 본질과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무용수(행위미술가)와의 갈등 장면
ⓒ 연비무용단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동살푸이, 칠채, 웃다리농악 장단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즉흥 북소리는 원초적인 몸짓(병신춤)을 더욱 절절하게 만들고, 사자의 움직임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큰 눈 부라리는 해학의 몸짓에서 진중한 움직임까지 보여줬던 사자는 마지막에 껍질처럼 돌돌 말려서 무의미한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소멸, 사라짐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자탈은 우리 모습을 빗댄 것 같다. 잠시 살아있다 사라지는 우리네 인생과 같지 않은가? 찬란한 찰나의 빛남 이면에는 셀 수 없는 무진 세월의 칠흑 같은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케 한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을 연주하는 이주은과 두 명(윤혜향, 김소정)의 발레리나
ⓒ 이혁발
세련된 조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과 2인의 발레리나

2부는 첼로의 선율과 두 명의 발레리나의 몸짓이 물결처럼 흐르고 출렁이며 만들어낸 작품이다. 연주회와 무용공연이 합쳐진 것이다. 노련한 무용수(윤혜향)의 섬세한 표현과 젊은 무용수(김소정)의 순수한 열정, 거기에 물처럼, 때론 열정적인 첼로 연주(이주은)가 만나 새로운 예술적 화음을 만들어내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연주를 눈앞에서 듣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그 음률에 맞춘 발레리나의 춤 조합은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이 조화로움은 사람들 간의 감정과 경험의 교감이며 이해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예술이 자기만의 만족이고 자기만의 '소리 지르기'일 때는 공감효과는 미미해진다.
 윤혜향 김소정 두 발레리나가 첼로 선율에 몸을 싣고 있다.
ⓒ 이혁발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그 감동이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지고 교감 되어 어울렁더울렁 함께 행복해지는 데에 있다. 이 선율과 몸짓 하나하나가 수백만 마리의 나비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행복의 날갯짓을 펄럭이게 할 것이다.
 3부에 출연한 안상명, 박혜월, 신동여, 강은실, 유명희, 홍정은, 한소희, 김동균, 김서영, 이영준, 김예빈, 김지우
ⓒ 손영민
고민과 경쟁, 안동 시민들이 만드는 현대무용 무대

3부는 시민 12명이 만드는 무대이다. 13살 중학교 1학년부터 67살까지 나이의 층도 다양하고, 직업도 학생, 교사, 공무원, 주부까지 다양하다. 번호표를 가지고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춤을 추며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영위하자는 데 공연의 의미를 담은듯하다.

얼굴이 다 다르듯이 키와 몸무게, 체형이 다른 12명의 독무는 정말 흥미로웠다. 임산부의 춤(움직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12명의 춤이 하나도 같지 않고 다 다르다는 점을 눈앞 무대에서 거듭 확인하는 것 자체로도 매우 흥미로웠다. 손짓 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구나, 그 '차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 공연을 보면서도 느낀다.

출연진들은 "모든 움직임은 춤이 될 수 있다", "움직임의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닌, 각자의 독특함에서 비롯한다."라는 손영민 안무가의 기획 의도 대로 시민 참여자들은 각자의 개성 있는 움직임을 펼치며 자아성취의 뿌듯함과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만끽했을 듯하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다시 돌아간 일상을 더욱 싱싱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무를 추고 있는 안동시민 안상명 씨
ⓒ 손영민
진심으로 만들어진 예술공연은 관람자의 정서에 긍정의 파장을 크게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공연 무대인사 후 출연진과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한 관객은 "가슴을 울린 좋은 공연이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나도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좋은 공연이 주는 먹먹하고 묵직한, 그 무엇이 충만한 그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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