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런데 뻔하지 않는 드라마

김상화 2025. 6.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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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SBS 드라마 <우리영화>

[김상화 칼럼니스트]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
ⓒ SBS
모처럼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정통 멜로물이 등장했다. 지난 13일 첫 방영된 SBS <우리영화>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소개된 SBS 금토드라마는 정의 구현·악인들 대거 등장·코믹 성향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주류를 이룬 바 있다.

이러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다뤄지면서 요즘 보기 드문 두자릿수 시청률과 OTT에서의 인기몰이를 바탕으로 동시간대 우위를 점해왔다.

그런데 <우리영화>는 기존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결을 취하고 있다. 검증된 인기 배우 남궁민과 새롭게 대세로 자리 잡은 전여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웃음기 대신 시청자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시선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초 인기리에 방영된 로맨스물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도 볼 수 없던, 전혀 다른 노선의 등장이기도 하다. 내일이 없는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건내는 <우리영화>는 예전 시대의 감성으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까?

[이제하] 화려한 데뷔, 아버지의 그늘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
ⓒ SBS
5년 전 어느날. 이제하(남궁민 분)는 데뷔작 <청소>로 영화계를 뒤흔든 괴물 신인 감독이었다. 500만 관객을 동원할 만큼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아버지의 그늘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부친의 별세 이후 제하는 여전히 두번째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형제 같은 제작자 부승원(서현우 분)은 집요하리 만큼 아버지의 걸작 <하얀 사랑> 리메이크 연출을 부탁하지만 아버지와 그의 연인이 함께 만들었던 옛 작품은 자신에겐 역린과 다름이 없었기에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정성 강한 B급 감독이 <하얀 사랑> 연출을 제안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제하는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뒤늦게 작품의 시나리오를 어머니가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바꾼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내용 보완을 위한 각색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제하는 시한부 환자의 자문을 받게 됐다. 그렇게 무명의 배우 이다음(전여빈 분)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다음] 내일이 없는 배우 지망생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
ⓒ SBS
어느덧 5년 여의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배우를 꿈꿨지만 '시한부'라는, 끝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다음에겐 내일이라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 또한 다음이기도 했다. 낡은 캠코더 하나 들고 브이로그마냥 일상을 촬영하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몇 차례 제하와의 만남이 이뤄진다. <하얀 사랑>을 상영하던 낡은 극장에서, 어느 편의점 앞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작품 리메이크를 위한 자문 역으로 섭외된 이다음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자문 역을 맡게된 시한부 이다음입니다"라고.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다음과의 만남 이후 대본 작업을 진행하던 제하의 눈 앞에는 다음의 환영이 보일 만큼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배우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다음은 1차 관문을 통과했고 두 번째 문턱을 넘기 위해 또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런 다음에게 제하는 이런 말을 건낸다. "조건이 있어요. 죽지 마요." 과연 다음은 <하얀 사랑>을 무사히 찍을 수 있을까?

미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
ⓒ SBS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정통 멜로물은 TV 드라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기 장르였다. 특히 시한부, 불치병 같은 소재를 이들 작품에선 어김없이 등장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복잡한 구성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수요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감성에 의존하는 정통 멜로물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젊은 사람들은 안본다니까요. 이딴 신파 누가 본다고"라는 1회 속 대사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영화>는 얼핏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소재와 내용으로 과감하게 2025년 TV 시청자들과 OTT 구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감독과 두 번째 삶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배우 지망생의 가슴 시린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를 갖게 만든다.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
ⓒ SBS
<천원짜리 변호사> 이후 3년 만에 SBS로 돌아온 남궁민은 20여년전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안경을 다시 착용할 만큼 초심으로 돌아갔다. 시니컬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 못잖은 이제하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녹여내고 있다.

이는 상대역 이다음을 연기하는 전여빈 또한 마찬가지다. <거미집>, <검은 수녀들> 등을 통해 어둡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데 이어 이번 <우리영화>에선 슬퍼할 시간조차 없는 시한부 삶의 주인공을 감정 과잉 없는 연기로 잘 표현해낸다.

내일이 없는 두 사람의 대비되는 삶을 하나로 품으면서 12부작 조합의 비교적 짧은 구성은 예전 정통 멜로물에선 보기 힘들었던 빠른 이야기 전개를 내비친다. 덕분에 <우리영화>는 소위 '구닥다리' 감성이 아닌, 요즘 시대 속에 잠시 숨어 있던, 무덤덤하지만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 놓고 있다.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의외의 전개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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