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마음 두근거려요"... 연기 속에서 자아 찾는 아이들
지난 13일, 오후2~4시까지 대학로예술극장 5층에서는 '대학로꿈잼학교'의 '나도 배우'라는 연극교육 수업에서 중원중학교 20명의 학생들이 실제로 배우가 되어보는 체험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대학로 일대에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연극을 관람하는 학교밖 수업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배우가 되어보는 수업은 거의 없는데, 이 수업 현장을 직접 참관하여 현장체험기를 담았습니다. <기자말>
[이규승 기자]
"이번엔 감정을 담아서. 한 걸음 앞으로 갈게요. 조명을 향해서…"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5층의 '스튜디오 하늘'. 검은 댄스플로어 위로 중원중학교 스무 명의 학생들이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객석도, 관객도 없는 공간. 오늘만큼은 각자의 이름 대신, '민석이의 친구'로서 무대에 오른다. 자퇴를 선택한 친구를 목격한 친구로서.
조명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비추고, 그곳은 이들의 감정으로 천천히 채워진다. 짧은 대사, 조심스러운 눈빛, 낯선 움직임.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 연극으로 완성된다. 그중 한 학생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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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꿈잼학교'의 프로그램은 플레이그룹의 유은지 대표와 배우들이 중원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배우를 체험하는 수업이 진행됐다. |
| ⓒ 필립리 |
플레이그룹 잼잼의 유은지 대표는 이 프로그램을 '연극적 장면을 통해 삶을 비추는 감정 실험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이들이 누군가를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를 다시 만나는 게 중요"하다며, "연극이 갖는 이중적 시선, 즉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을 되돌아보는 힘'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며고 취지를 설명했다.
"예술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공감, 표현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에요. 그동안 학교에서는 틀린 답을 고쳐왔다면, 이곳에선 말하지 못한 감정을 꺼내는 것 자체가 옳은 답이에요"
말 없이 전해진 눈빛, 그 안에서 시작된 '자기 존재의 선언'
수업은 아주 단순한 훈련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는 '시선'. 아이들은 짝을 지어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사랑, 경멸, 그리움 같은 감정을 말 없이 눈빛으로 전해보세요."
유 대표의 말에 따라, 말 대신 감정을 담은 시선이 오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눈빛 안에 감정이 살아났다. 아이들 사이에 처음 마주한 어색함은 곧 감정을 나누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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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레이그룹 잼잼의 유은지 대표(우측에서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배우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워밍업 프로그램으로 긴장감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
| ⓒ 필립리 |
유 대표는 "이 수업은 단지 대사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시선, 말과 침묵을 통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자기를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나'로 서보는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 과정을 '심리적 정렬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감정은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 몸을 통해 밖으로 나올 때 진짜가 돼요.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꺼내는 경험은 이후에도 자기 삶에서 큰 자원이 됩니다."
'민석이의 두 번째', 침묵의 목격자들이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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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꿈잼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중원중학교 학생들은 배우의 동선에 맞게 직접 다양한 체험을 진행한다 |
| ⓒ 필립리 |
유 대표는 "아이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교실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연극이라는 상황과 허구 속에서는 오히려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죠. 어떤 학생은 대사 없이 멈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장면을 완성했어요"라고 말했다.
연극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은 민석이 남긴 빈 책상을 바라보며 각자의 감정을 꺼내 놓는다. 누군가는 조용히 쪽지를 남기고, 누군가는 인터뷰 형식의 대사로 "그때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라고 묻는다. 이 장면에서 유 대표는 "말하지 못한 감정을 무대 위에서 다시 소환하는 일, 그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은 괴롭힘을 고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방관했던 우리를 돌아보는 이야기예요. 어떤 학생은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는 대사를 반복하며 점점 목소리를 높여갔고, 그것이 연극의 가장 강렬한 순간이 되기도 했죠"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각자의 감정으로 만들어낸 장면들은 하나의 서사로 이어졌다. 목격자였던 이들은 무대 위에서 주체가 되었고, 그 안에서 다시 자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감정의 연결이 바로 공동창작의 힘이었다.
"타인을 상상하는 훈련이자, 자기 마음을 정리해보는 도구"
연극 수업은 공동창작의 구조로 운영된다. 참여자들은 극장 내 곳곳을 돌며 배우들과 인터뷰하고, 이야기와 감정을 수집해 장면을 만든다. 대본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의 선택과 감정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고, 배우들 역시 매 순간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이번엔 영상과 연극이 결합된 형식도 시도된다. 아이들은 인터뷰 장면을 촬영하고, 직접 모니터링하며 자신의 표정과 감정을 분석한다. "어떤 얼굴 각도가 내 감정을 더 잘 담고 있을까?" 자신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연출하는 경험이 아이들 안에서 일어났다.
"이번처럼 인터뷰 형식과 즉흥극, 감정표현 훈련이 결합된 수업은 아이들 스스로 '내 감정이 무엇인지' 탐색하게 해주는 계기가 돼요. 감정이란 건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해석하는 힘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연극이야말로 아이들이 타인을 상상하는 훈련이자, 동시에 자기 마음을 정리해보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이 경험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는 힘이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진로교육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공동체를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수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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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3일, 대학로예술극장 5층의 스튜디오 하늘에서는 '대학로 꿈잼학교'가 열렸다. 이날은 중원중학교 스무 명의 학생들이 직접 '나도 배우'가 되어 보는 연극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
| ⓒ 필립리 |
"그냥 연기한 건데… 이상하게 마음이 계속 뛰었어요."
연극은 짧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타인이 되었고, 동시에 자신을 만났다. 그날 무대에서 피어난 감정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 아이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 이게 예술교육이 아이들에 남겨준, 오래 함께할 울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학로 꿈잼학교’는 지난 2016년 9월 자유학기제 연계 청소년 예술진로체험으로 시작했고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을 활용하여 ‘무대와 관련된 예술체험 및 진로 탐색’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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