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호에 부족한 이것... '자전거 친화 속초시'는 어떨까요
[이현우 기자]
도시공학 전공을 한 나는 이사를 가면 꼭 걸어서 동네를 한 번 둘러본다. 동네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숨은 명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품을 팔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동네를 거니는 산책이, 최근엔 달리기로 진화했다. 2년 전 시작한 복싱 때문이다.
요즘 내 근육의 주식은 복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별미로 달리기를 곁들여주고 있다(관련 기사: 비주류의 어퍼컷 https://omn.kr/2aoy4 ). 시간이 날 때면 3~5km를 달린다.
나만의 이런 동네 관찰법은 새로운 지역에 여행하거나 방문할 때도 적용된다. 혼자 주로 여행을 할 때는 오랜 시간 걸어서 도시를 경험했었다. 결혼 이후에도 걸어서 도시 여행을 하곤 하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줄었다.
속초시 풍경을 감상하려면 '이곳' 한 바퀴 달려보세요
지난 5월 셋째 주에 3박 4일 속초와 고성 일대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숙소가 속초시 청초호 부근이었다. 포털 사이트 지도서비스를 이용해 보니 청초호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5km 정도다. 평소에 30분 정도에 달리던 거리다. 가족들이 숙소에서 쉬는 동안 청초호를 한바퀴 달리면서 속초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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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시 홈페이지 관광 안내 속 청초호 모습 (https://www.sokcho.go.kr/ct/tour/attraction/nature#). |
ⓒ 속초시 홈페이지 |
더 달리면 금강대교와 설악대교로 진입한다. 진입 직전 항구변에 36층 새 아파트가 보인다. 목근육을 최대한 늘려 고개를 들어야 확인할 수 있는 높이다. 서울에 있을법한 고층 아파트가 속초에도 있다니. 고층부에서는 동쪽 바다와 서쪽 청초호와 설악산 풍경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사에서는 풍경 프리미엄을 노리고 개발했을 것이 자명하다. 개발 이익은 속초시민에게 돌아가기 보다는, 고층 아파트를 구입한 소비자와 개발사에게 돌아갈 것이다. 풍경으로 인한 이익이 특정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게 합당한 걸까.
속초시는 인구 5만 명이 좀 넘는 도시다. 강원특별자치도 내에서 인구 순위로는 다섯 번째다. 그런데 속초시 미분양은 1,021호로 2025년 3월 기준 강릉시(1,185호) 다음으로 높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속초시에 부동산 개발 열풍이 분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미분양신고가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속초에는 더욱 많은 미분양 주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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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대교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풍경 |
ⓒ 이현우 |
분명히 자동차를 타면서도 지났던 길인데 달리다 보니 자동차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인다. 이것이 달리기나 걷기의 매력이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는 속초시민은 어떤 느낌일까.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설악대교를 넘어 활어회센터를 끼고서 길게 뻗은 도로를 달린다. 대형마트도 보인다. 코너를 돌면 다시 데크길이 나오고 청초호유원지가 있다. 설악산과 청초호 풍경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달릴 수 있다. 5km 달리기 코스의 끝자락이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지면을 박차는 힘이 더해진다.
5km 달리기가 끝났다. 어느새 땀은 흥건해져 입은 옷이 젖어버렸다.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속초시를 짧고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속초, 자전거도로 설치 등 '자전거 친화도시' 제안합니다
속초는 서쪽에 설악산이, 동쪽에 푸른 빛깔의 동해가 맞닿아 있는 도시다. 장엄한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한반도 지형의 아름다움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지역이다.
청초호를 한 바퀴 돌면서 생각했다. 청초호 산책로에 자전거도로와 공유자전거를 함께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로데오거리와 중앙시장, 대형마트, 회센터가 청초호 인근에 있다. 항구 근처에는 여러 로컬 맛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과 양양 낙산사, 고성 관광지 등은 자동차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겠지만 속초시내의 주요 관광지는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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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물 판매지 옆 청초호 모습 |
ⓒ 이현우 |
훌륭한 시도이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우리나라는 '엄복동의 나라(한때 자전거 선수로 유명했던 엄복동은, 생전 수시로 자전거를 절도해 공판을 받았다는 기사도 있음)'. 카페에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놓고 가도 잃어버리지 않지만, 잠금장치를 해둬도 자전거는 훔쳐가는 나라다. 안타깝게도 아바이마을 양심자전거는 자전거가 모두 사라지면서 끝났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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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시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아바이마을 체험 화면갈무리(https://www.sokcho.go.kr/ct/tour/attraction/experience?contentSeq=118). |
ⓒ 속초시 홈페이지 |
아름다운 풍경을 고층 아파트 조망으로만 활용하는 도시보다는, 자연환경에 조화로운 도시로 만드는 게 지속성이 있을 것이다. 외지인에게 아파트 조망을 다 빼앗기면 되겠는가.
속초시 북부 지역에 있는 영랑호 주변에는 이미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고,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업체도 있다. 이를 활용해 지자체와 민간이 연계하여 함께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청초호 주변도 자전거 관련 기반시설을 잘 조성한다면 새로운 자전거 친화도시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지역 주민뿐 아니라 외부 방문객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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