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국대 출신 변호사입니다, 어떻게 둘 다 했냐면요
대선 전인 지난 5월 23일 국회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스포츠 정책 제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에 맞춰 당시 발제자들의 발표 내용을 다듬어 싣습니다. 글쓴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소속 서정화 변호사입니다. <편집자말>
[서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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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2월 11일 오후 강원 평창군 휘닉스 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모굴 결승에 출전한 서정화 변호사 |
| ⓒ 연합뉴스 |
이후 다시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0년 밴쿠버부터 2018년 평창까지 세 번 연속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운동선수는 곧 '학생'이었고, 공부하는 학생은 누구나 운동에 도전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국내 로스쿨에 진학해 스포츠 인권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국가대표를 포기한 시절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선수냐, 학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분위기다. 그 결과, 운동을 좋아하던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꿈을 접게 되고, 엘리트 스포츠의 길을 걷는 선수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왜 엘리트 스포츠가 쇠퇴하는가
오늘날 한국 스포츠계는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서는 유소년 선수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운동을 지속하는 학생조차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 시간 또한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교육계, 체육계, 학부모, 정책 입안자 모두 "엘리트 스포츠와 일반 학생의 스포츠 참여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엔 합의가 부족하다. 한쪽에서는 엘리트 선수 감소의 원인을 학업 부담이나 진로 불안정 탓으로 돌리며 단기적인 유인책이나 시설 확충만을 논의한다. 또 운동도 공부라며 헌법상 인정될 수 없는 '운동권'(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권리)을 헌법 제31조 교육받을 권리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 학생의 스포츠 참여 확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빠져있다. 결국 엘리트 스포츠와 학교 체육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양쪽 모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체육특기자 제도를 포함한 엘리트 스포츠 육성 방식이 '선택의 강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은 '운동을 하려면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 혹은 '공부하려면 운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운동에 재능과 흥미가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은 더 안정적인 진로인 공부를 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로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소수를 조기 선발해 집중 훈련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이 언제든지 엘리트 스포츠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공부와 운동의 병행이 가능하고, 다양한 수준에서 선수와 팀이 공존하며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갖춰질 때, 학생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할 수 있는' 길 위에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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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국민생활체육조사 관련 자료 |
| ⓒ 문화체육관광부 |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참여 경험이 있는 체육활동'으로 응답자의 41.2%가 '걷기'라고 답했다. 뒤이어 등산 15%, 헬스 11.5%, 달리기 6.8% 순이었다. 이는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대한 접근성과 경험이 제한돼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은 야구, 농구, 축구 등 종목별 클럽과 리그가 전국적으로 존재하고,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다양한 종목이 활성화돼야 시설 확충 요구도 설득력을 얻고, 민간 자본이든 국가 재원이든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
시설과 수요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둘 다 병행해 키워야 한다. 스포츠를 일상화하고, 다양한 종목의 참여 인구를 늘리며, 동시에 시설과 제도를 확충하는 입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은 노동을 대체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며, 인간의 여가 시간을 확대하고 있다. 주 4일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의 신체 활동'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몸을 직접 움직여야 가능한 활동이며, 협력·경쟁·감정·몰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간 활동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증가한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스포츠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해답이 된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 뛰고, 웃고, 경쟁하며 갈등을 줄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 힘은 AI가 제공할 수 없는 인간만의 자산이다.
엘리트 스포츠는 더 이상 소수의 특권이 돼선 안 된다. 모든 학생이 도전할 수 있는 구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진정한 엘리트 스포츠가 살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과 연결된다. 우리는 더 이상 '운동이냐, 공부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 아이들에게 둘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운동은 그 자체로 인간 삶의 일부이며, 학교는 그 운동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곳이어야 한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선택을 강요하는 제도에서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로. 그렇게 될 때 엘리트 스포츠는 다시 살아나고, 학생들은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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