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길' 이름만 덩그러니... 무너진 대학, 멈춘 도시

강원관광대 폐교 1년 후 학교 앞에 가보니... 지방대 소멸은 단지 학교만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박민욱, 현주연, 김다연 기자]

▲ 강원관광대학교 정문.

"여기 도로 이름이 '대학길' 인데, 정작 대학교가 없어졌으니… 폐교 이후 문 닫은 가게가 한둘이 아니에요."

지난해 2월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강원관광대학교가 문을 닫았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학교 정문 앞으로 이어지는 '대학길'은 이름만 남아 있다. 대학이 문을 닫은 이후, 당연하게도 거리에서 학생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 강원관광대 앞 손맛포차 내부. 폐교 이후 학생들의 발걸음은 끊겼다.

과거 이 거리에서 저녁 6시는 가장 분주한 시간이었다. 식당 앞에는 기숙사에서 내려온 학생들이 줄을 지었고, 자취방으로 음식을 포장해가는 무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교 앞 손맛포차도 마찬가지였다. 가게 벽에는 좋은 간호사가 되기로 다짐하는 학생들의 낙서와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

폐교 이후 거리의 풍경은 달라졌다. 저녁 6시만 되면 사람이 다니지 않을 정도로 상권은 위축됐다. 문 닫은 가게도 한둘이 아니다. 5월 초에 만난 손맛포차 봉경희씨는 "도시락 배달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지금은 하루 종일 가게를 놀리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 강원관광대학교 대학길 거리의 모습.

10년 전 강원관광대학교 학생이었던 장영만씨는 이 지역의 변화를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그가 재학하던 시절의 시내는 자취생과 기숙사생들로 북적이고, 1층부터 3층까지 술집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빼곡히 들어섰던 건물은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

1997년 설립된 강원관광대학교는 30년 가까이 학생들의 배움터이자 지역 경제를 지탱해온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방대학 존폐 위기의 흐름 속에서 2021년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정돼 국가 지원이 끊겼다. 이후 3년, 신입생 충원율이 30%를 밑돌며 학교 유지가 어려워지자 폐교를 결정했다.

▲ 대학길 곳곳 상가 임대 문의 게시물이 걸려 있다.

유일하게 청년 유입을 담당하던 강원관광대학교마저 문을 닫으며 태백시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학이 있던 시절, 학생들과 교직원은 지역 내 원룸과 아파트에 거주하며 소규모 상권의 주요 소비층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폐교 이후 이들은 대부분 지역을 떠났고, 상가 공실과 부동산 침체가 뒤따랐다.

태백 공인중개사사무소 최기업 대표에 따르면 폐교 이후 원룸과 상가 공실률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평균 월세 역시 5만 원가량 하락했다. 대한부동산협회 태백시지회 최형중 지회장 역시 "태백은 외부 유입이 어려운 '항아리 상권'인데, 그 중심축 역할을 하던 대학이 사라지며 상권 회복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4년 전국 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태백시는 지수 0.202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번째로 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소멸 위험 도시 10곳 중 실제 인구(3만7642명)가 제일 적다.

송명섭 강원관광대살리기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월 이뤄진 서면 인터뷰에서 "강원관광대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사회, 문화, 교육 인프라와 연결된 존재였다"며 "수익성을 이유로 추진된 일방적인 폐교로, 지역의 정주기반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조선대학교 건축학과 염대봉 교수는 지난 2일 서면 인터뷰에서 "대학의 폐교는 대학과 함께 동반 성장해온 지역사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지방소멸을 가속화는 주요 요인이 된다"고 전했다. 염 교수는 "대학 폐교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고급 노동력과 전문 지식을 적시에 공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직원의 소비지출 소멸, 인구감소 등으로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와 동시에 지역문화의 계승·발전 및 문화 창출을 떨어뜨려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동인이 된다"고 전했다.

방치된 폐교 부지는 도시의 슬럼화을 가속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폐교된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다. 당시 학생들의 연간 소비는 약 1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1000여 명에 달하는 학생이 빠져나가자 지역은 마치 중형 공장이 사라진 것과 맞먹는 영향을 받았다. 이후 강의실 창문은 깨지고 내부 집기는 방치되며, 캠퍼스 주변은 빠르게 슬럼화됐다. 빈 상가와 빈집은 쓰레기로 가득 찼고,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상인들은 생계를 잃고, 대학 부지는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전환점은 폐교 6년 만에 찾아왔다. 남원시가 서남대 부지를 매입했고, 전북대학교가 해당 부지를 활용한 지역재생 모델을 정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제출해 선정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폐교 지방대학을 활용한 사례로 주목받은 해당 계획은 캠퍼스를 '전북대 남원 글로컬캠퍼스'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다.

부지에는 K-컬처, K-커머스, K-과학기술 관련 학부 3개가 신설되며, 총 1,200명의 해외 유학생 유치를 목표로 한다. ▲한국어학당 운영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타운과 창업 복합단지 조성▲남원시 특화산업 분야 기업 및 연구소 입주 유도 등, 총 604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사업은 2026년 개교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염 교수는 해당 사례를 "폐교가 지역 위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방대학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대학 자체의 존속을 넘어서, 지역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전 국토의 균형 발전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로 그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염 교수는 "2000년 이후 현재까지 23개 대학이 문을 닫았다"며 지금의 인구감소 속도라면 향후 20년 이내에 국내 50여 개 대학이 폐교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기존 폐교대학의 대다수는 지방의 중·소도시에 위치한 사립대학이었지만, 앞으로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대학 자체의 존속을 넘어서, 지역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운대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