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방에만 있던 딸... 엄마보다 할머니 말이 먹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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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동네 인근 중학교 학부모 천 명이 모인 단톡방이 있다. 감정 기복이 가장 크다는 중학생을 키우는 엄마들이라 그런지, 아이들과의 갈등을 호소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아이와 싸우다가 울음 터졌다는 엄마도 많다. 감정을 추스르려고 무작정 걷다 보면 2만보를 금세 채운다는 말도 흔하게 올라오곤 한다.
사춘기 청소년과 함께 하는 나 역시 아이와 감정 틀어지는 날이 루틴처럼 반복된다. 그런 날에 단톡방에 쌓인 글들을 읽어 내려간다. 그 방을 통해 나는 '우리가 함께 걷고 있구나'라는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드라마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눈, 그 어른을 다시 돌아보는 아이의 시선, 그런 이야기들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엄마의 말은 왜 닿지 않을까
얼마 전 본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일란성쌍둥이인 미래와 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래는 공부로 주목 받지만, 미지는 그런 미래 뒤에서 존재감 없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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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지의 서울> 속 미지(박보영 역) |
| ⓒ tvN |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지만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오늘은 살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리 어떻게든 오늘은 살자."
미지는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매일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다.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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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지를 살린 할머니 '오늘은 살자,' 라는 그 말이 어른인 내게도 말하는 거 같았다 |
| ⓒ tvN |
말보다 마음이 닿으려면
며칠 전, 단톡방의 한 엄마는 고등학생 아이와 몇 달 째 냉전 중이었다고 했다. 갈등이 계속되자 어느 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뭐라도 칭찬해보자.'
그날부터 엄마는 아들에게 뭐든 "잘했네, 잘했어"를 반복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아이는 무반응이었고, 엄마는 스스로 민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밥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었을 때, 엄마가 무의식처럼 말했다.
"잘했네."
아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 이제 젓가락만 들어도 칭찬받네."
그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단다. 긴 시간 얼어붙었던 관계가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다른 누군가 한, 그런데 아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으면 어쩌냐는 질문에 그 당사자는 '애들이 건강하게 숨 잘 쉬고 있으면 잘하는 거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부모 자녀 관계가 극심한 갈등으로 치달아 아예 망가지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다 싶어진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에게 '정답'을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그게 양육자의 의무 같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관계에는 정답보다 '오늘 하루를 같이 살아내는' 감정의 유연함이 더 절실할 때도 있다. 미지의 할머니가 그랬듯이, 단톡방의 엄마가 그랬듯이, 때로는 그냥 다 받아주는 말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관계는 물처럼 흐르지 않으면 금세 굳어버린다. 서로의 마음이 엇갈릴 때마다 우리는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다. 그 위를 무사히 건너려면, 발끝으로 조심스레 감정을 눌러가야 한다. 날마다 금 가는 마음을 붙잡고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 그것이면 된 날도 있다.
"어떻게든 오늘은 살자. 내일은 모르지만, 오늘은 함께 있자."
미지 할머니의 말이 지금의 아이와 나에게 꼭 필요한 주문이다. 냉전의 날이 반복되더라도 이 주문 덕에 반복의 간격이 조금씩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언제 그런 날이 있었냐는 듯이 웃는 날도 오겠지.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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