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 표류하는 러시아 우주인... 믿을 건 AI뿐?
김성호 평론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즉 SF장르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한 장면을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역시 우주, 그 드넓은 미지의 공간에 놓인 인간의 모습일 떠올릴 테다. 하얀색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안팎을 둥둥 떠 유영하는 모습은 어지간한 SF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저 유명한 <그래비티>부터 <마션>, <인터스텔라> 등 대단한 작품에서도 이런 장면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 장면쯤 더 꼽아보라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인공지능(AI)과의 대화가 아닐까 하고 짚어본다. 신체 없이 서버 위에 존재하는 AI든, 형체를 갖고 동작하는 것이든 간에 인간이 우주공간에서 AI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작품에서 수도 없이 보았을 테다. 하다못해 <스타워즈> 류의 다분히 극화된 작품부터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이리언> 시리즈나 <패신저스>, 심지어는 <레지던트 이블> 등 다양한 작품군에서 인간에게 신뢰받고 때로는 인간을 위협하는 어마어마한 성능의 AI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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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 폴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프리 폴>은 이처럼 쉽지 않은 선택을 기꺼이 감행하는 용감한 작품이다. 올렉 우라자이킨의 신작은 이 시대 보기 드문 러시아산 SF로, 우주공간에서 통신이 두절된 채 유영하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우주정거장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막심(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분)은 러시아 우주기지 엔지니어다. AI와 로봇 등 첨단기술이 인간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 어쩌면 끝물 인간 우주인일지 모르는 막심이 동료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우주선 외부를 돌아보고 있다. 간간이 수리할 구석이 생기는 탓에 외부를 나다니는 일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우주공간에 우주복 하나만 믿고 나가 있는 만큼 상당한 긴장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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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 폴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생존확률이 채 얼마 되지 않는 상황 가운데서 막심은 안야의 조력만을 토대로 인류가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모험을 감행한다. 단 몇 초, 몇 센티미터만 어긋나도 영영 지구로의 귀환을 바랄 수 없게 되는 시도를 그는 거듭하여 성공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 과정을 마치 1인칭 슈팅게임처럼 묘사하기도 하는데, 지난 몇 년에 비해 상당히 고도화된 기술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큰 어색함 없이 즐기도록 한다.
<프리 폴>은 매우 단순한 SF로, 그 장르를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우주유영 서스펜스 SF 쯤이라 적을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 AI와 우주유영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가운데, 그 너머의 이야기, 이를테면 우주를 개발하려는 업체의 계획이며 인간을 공격하는 외계생명체의 존재 같은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극히 단순한 상황 가운데 일찌감치 혼자가 되고 통신까지 두절된 주인공이 중요한 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이 영화의 중추를 이룬다. 그 임무가 관객을 쉽게 설득하므로 긴박함과 절박함이 얻어지고, 남은 과제는 무리 없는 표현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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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 폴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프리 폴>은 이에 더하여 AI를 적극 활용해 장르성을 극대화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수차례 되풀이되어온 인공지능의 존재를 장르적으로 충실히 활용한다. 이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추를 이룰 뿐 아니라, 나름의 승부수가 되기도 한다. 그에 대한 만족도는 보는 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겠으나 영화가 단 몇 개의 설정만으로 이야기 전체를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끌어갈 수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우주공간이란 특수성을 빼고 본다면 <프리 폴>은 고립 재난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협곡 탐험 중 암석에 팔이 낀 사람의 이야기 <127시간>이나 눈 떠보니 관 속에 들어 매장된 상태로 휴대폰과 라이터, 칼만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는 사내의 이야기 <배리드>, 바다 아래 바위에 깔려 올라오지 못하는 언니를 구해야 하는 동생의 이야기 <다이브: 100피트 추락> 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다.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 생존을 도모하고, 나아가 동료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본 재난영화와 꼭 닮아 있단 걸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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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 폴 포스터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반대로 단점 또한 명확한데, <프리 폴>의 설정과 구성, 결말에 이르는 승부수까지가 모두 이 영화가 최초로 시도한 게 아니란 점이다. 말하자면 다른 작품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 선택을 따왔다는 것이다. 이중 일부는 클리셰라고 평가될 수 있을 만큼 식상한 구석도 없지 않아 SF가 새로워야만 한다고 여기는 관객에겐 치명적 단점으로 꼽힐 수도 있겠다.
영화는 명확한 장단을 취하는 과정에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기술력과 연출, 연기가 결정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그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러시아 영화계가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력과 차이를 보일 밖에 없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러나 한 마디로 평하자면 나는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기술력은 과거 뒤떨어져 도저히 보기 힘들던 수준을 훌쩍 넘어 할리우드 상당수 영화와도 겨뤄봄직한 정도에 이르러 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미 할리우드가 밟아본 적 있는 영역만을 오가고 있다지만, 새로움만이 감동과 즐거움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발전한 기술력이 과거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좁혀냈단 걸 확인할 수 있고, 연출과 연기 또한 할리우드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프리 폴>은 차라리 러시아 현주소를 확인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도약점으로, 마치 우주정거장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작품이라 보아야 할 테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치 않고 무작정 규모를 키웠다가 참패를 맛본 <승리호>와 같은 시도를 <프리 폴>은 철저히 거부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는 여러 시도들을 통해 제작진은 저들이 해낼 수 있는 경계를 효과적으로 탐색한다. 그 조율을 통하여 차기작의 가능성 또한 내다볼 수 있을 테다. 나는 이와 같은 선택을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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