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건 기억과 진실뿐" 두 베트남 학살 피해자 한국 찾는다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이자 한국군 전투병 파병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베트남전쟁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는 새정부가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하며 7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싣는다. <기자말>
[권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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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미 위령비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응우옌티탄(2024년 1월) . 하미학살 사건 당시 11세였던 그는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수류탄 파편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방공호에서 그의 어머니(46세)와 남동생(8세)은 목숨을 잃었다. |
| ⓒ 한베평화재단 |
1년 전 봄이었다. 다낭에 살고 있는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의 집을 찾았을 때였다.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동명이인)이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한 후였다. 그러나 하미학살은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화위)에 대한 진실규명 요청이 '외국인', '외국에서의 사건'이라는 사유로 기각되어 피해자들이 행정소송을 한 상황이었다. 퐁니의 승소 소식에 함께 기뻐한 하미 탄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일 앞에서는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날 자택에서 하미 탄은 내게 물었다. 한국을 방문해 진화위든 국방부든 피해자인 내가 직접 호소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퐁니 사건처럼 하미 사건도 증언을 해줄 참전군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미 탄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을 토로했다. 탄은 상냥하고 차분한 사람이지만 하미의 진실 규명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했다.
"기력이 있는 한 하미의 진실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하미 위령비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하미 탄이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탄은 진실을 뜻하는 베트남어 '스텃(Sự thật)'을 아프게 반복해야 했다.
하미 탄이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8년 4월. 한국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건을 다룬 민간법정인 '베트남전쟁시기민간인학살진실규명을위한시민평화법정(아래 시민평화법정)'에 퐁니 탄과 함께 원고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가 가해국 한국을 찾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국행을 앞두고 하미 마을에서 열린 가족회의에서 굳이 먼 한국까지 가야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누구도 하미 탄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하미 사건은 증거가 부족해"
시민평화법정은 퐁니·퐁녓학살과 하미학살 사건을 다루었다. 이 법정을 계기로 학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증거 자료와 쟁점들이 집대성되었고, 자연스럽게 두 사건을 실제의 법정에서 어떻게 다룰지 모색하는 길이 열렸다. 상대적으로 증거 자료가 풍부했던 퐁니·퐁녓은 2020년부터 국가배상소송을 추진했다. 반면 사법부의 문턱을 넘을 증거 자료가 부족했던 하미학살은 고민 끝에 진화위의 문을 두드렸다. 권위주의 정부시기에 벌어진 학살, 국가폭력, 인권침해 문제 등의 진실규명을 이어온 진화위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하미 탄은 입버릇처럼 "하미 사건은 증거가 부족해"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퐁니·퐁녓의 승소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가배상소송의 원고 퐁니 탄은 2023년 2월 1심에서 승소했고 이후 2025년 1월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연이은 승소에 하미 탄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러움을 넘어선 희망을 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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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미 사건 행정소송 1심 패소 기자회견(2024.6.25) 영상 발언하고 있는 응우옌티탄 |
| ⓒ 김창섭 소박한자유인 |
그날 하미 탄은 정말로 화가 났다. 나는 통역을 하는 자리에서 하미 탄의 분노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미 탄은 피해자의 요청을 거부한 진화위와 재판부의 법적 근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국방부, 진화위, 재판부 모두 자신이 온몸으로 겪은 진실을 회피하는 부당한 현실이 하미 탄을 짓눌렀다. 그날 이후 나는 비관적인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야말로 퐁니 사건은 운이 좋았던 것이고 나머지 사건의 운명은 하미 사건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베트남전쟁 문제에 있어 대한민국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6월 18일, 한국을 찾는 두 명의 응우옌티탄
"한국에서 초청하면 오실 수 있을까요?"
2025년 1월 다낭에서 나는 하미 탄에게 물었다. 퐁니 사건의 항소심 승소 판결을 앞두고 하미 탄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나의 물음에 하미 탄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베평화재단은 2025년에 베트남 피해자 방한을 적극 고려해보자는 논의를 이어왔다. 베트남 피해자가 한국에 온다고 해서 가로막혀있던 진상규명의 길이 곧장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아갈 길이 막혔다고 생각했을 때, 베트남 피해자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의 시민들은 더 많은 연대의 힘을 쏟아냈고 그렇게 평화운동이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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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승소 기자회견(2025.01.17) 기뻐하고 있는 영상 속 응우옌티탄과 화상 연결 노트북을 들고 있는 원고측 변호인단 임재성 변호사(한베평화재단 이사) |
| ⓒ 김창섭 소박한자유인 |
한베평화재단 등 다양한 시민단체와 개인이 연대한 '베트남전쟁문제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가 2025년 두 탄의 한국 초청에 마음을 모았다. 퐁니 탄에게 한국 초청을 제안했을 때 그는 바로 동의했다. 다만 그는 한 가지를 물었다. 소송이 대법원에 갔는데 자신이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대법원에서는 변론기일을 두지 않아 원고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하미 탄 님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세요. 퐁니는 계속 이겼지만 하미는 계속 졌잖아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어요. 베트남 피해자가 직접 한국을 찾으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지도 몰라요. 계속 승소한 퐁니 탄 님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탄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응, 내가 갈게. 가야지."
한국 방문을 보름 앞두고 두 탄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탄이 한국에 오면 하고 싶은 말'. 국회 기자회견 성명서 원고 작성을 위해 나눈 이야기를 통해 두 사람을 한층 더 깊게 느낀 시간이었다. 하미 탄은 탄식하다가도 희망을 품은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가슴이 뛰었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돈도, 권력도 없어. 내가 가진 건 말이야, 기억과 진실뿐이야. 그런데 내가 한국 국회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한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높은 곳에 내 진실을 가져갈 거야. 그곳에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정의롭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 하미 탄
퐁니 탄의 언어는 승소 이후 점점 달라졌다. 피해자 개인의 억울함을 푸는 것에서 더 나아가 멀리 보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퐁니 탄이 가야 할 아득하고 먼 길의 무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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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퐁니·퐁녓 위령비 앞에서 한국 시민들을 만난 응우옌티탄 사건 당시 8살이었던 그는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생존했지만 어머니(43세)와 언니(11세), 남동생(6세)은 목숨을 잃었다. |
| ⓒ 한베평화재단 |
오는 6월 18일, 하미와 퐁니의 두 응우옌티탄이 한국을 찾는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문제의 진실규명 촉구를 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1만 명 청원이 진행 중이다. 수많은 한국 시민들이 '잊힌 기억', '불편한 진실'인 베트남전쟁과 자신의 연결 혹은 연루됨을 생각하며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의 피해자들이 말할 한 시간을 디딤돌로 이제는 더 많은 우리가 연결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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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1만 명 서명운동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진실규명 촉구 청원 |
| ⓒ 베트남전쟁문제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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