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람과 삶을 어떻게 연결하는가

이안수 2025. 6.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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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올드 산후안에서 본 프로젝트 El MAC en el Barrio(이웃 속 미술관)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 푸에르트리코 산투르세 산투르세는 최근 몇 년 동안 예술가들과 창의적인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과거의 쇠퇴를 극복하고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재생되었다.
ⓒ 이안수

#1

1519년 스페인 정착민들에 의해 설립된 도시, 푸에르토리코 올드 산후안을 오가면서 접하는 산투르세(Santurce) 골목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감이 가는 곳이다. 담을 수리할 수 없는 곤궁한 살림 때문에 골목으로 삶의 형편이 그대로 노출된다.

올드 산후안이 있는 산후안섬과 제일 가까운 지역이기도 하다. 16세기 말과 17세기 내내 푸에르토리코의 시골과 서인도 제도 다른 섬에서 온 해방 노예와 탈출 노예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꾸준히 공동체가 성장해서 20세기 들어서는 아프리카계 푸에르토리코인, 도미니카인, 중국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이민자 집단이 이주해왔다.

이런 이유로 점차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 되었고 다양한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융합되는 곳이 되었다. 이렇듯 문화적 다양성이 제일 높은 곳이었던 이곳은 1960년대 이후 부자가 된 사람들은 교외로,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업중심지로 이동하면서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지역 쇠퇴로 임대료가 하락하자 2천 년대 들어서 싼 작업실을 찾던 예술가와 신생 창업가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의 벽은 예술가들의 벽화로 거듭나고 거리는 생동감이 되살아났다. 예술과 삶이 만나는 마을 풍경이 되었다.
▲ '산투르세 에스 레이(Santurce Es Ley)' 산투르세는 예술 축제인 '산투르세 에스 레이(Santurce Es Ley)'와 같은 이벤트를 통해 거리를 예술로 채우고 있다. 특히 Calle Cerra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와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 이안수
숙소 주변의 '까예 세라(Calle Cerra)'는 거리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네포(Nepo)를 비롯한 지역 아티스트들이 Santurce 지역을 예술로 채우는 작업으로 시작한 시도들은 2010년부터 'Santurce es Ley(산투르세는 법이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지역 및 국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도시 예술 및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창의성과 혁신이 촉진된다는 것을 이 산투르세를 오가며 확인하게 된다.

#2

지식이 지난날 밥을 먹을 수 있는 도구가 되었지만 이런 동네를 걸으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다. 방어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발길을 멈추어 서게 하는 것들을 모두 헤아리기 어렵다.

배낭을 놓고 올드 산 후안으로 가기 위해 호스텔을 나서 몇십 미터를 걸었을 때 사람들이 건물의 외벽에 대형 사진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업의 광고 작업인가 싶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숙소로 돌아오는 때에도 그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제야 발길을 멈추고 유심히 사진 속 텍스트들을 읽기 시작했다.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 예술가들의 협업 예술가들은 협업을 통해 함께 작업한다.
ⓒ 이안수
"이 작업이 무슨 작업인 줄 아시겠어요?"
"글쎄요. 낮에는 어떤 기업의 광고 브랜딩 작업인 줄 알았어요. 지금 보니 각 인물들의 메시지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군요. 그가 최선으로 일구어 뭔가를 갖게 된 사람들이고 마침내 그것을 누군가를 위해 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요."

"맞아요. 이 작업은 저 니나(Nina Méndez-Martí) 작가의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젝트예요. 함께 작업을 하는 분들도 같은 예술가들이지요. 이렇게 협력하면서 함께 작업을 합니다."
"산투르세의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아름다운 협업이군요. 저는 한국에서 온 안수라고 합니다. 이런 공동체의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에어드레말리즈(Airdremaliz Ortiz Alers)예요. 세 블록 아래의 푸에르토리코 현대미술관(MACPR : Museo de Arte Contemporáneo de Puerto Rico)에서 근무하는 큐레이터입니다. 푸에르토리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녀는 작업하는 작가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들 주목해 주세요. 이 분은 한국에서 온 안수 씨입니다. 인사들 하세요!"

니나 작가를 비롯한 협업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작가들은 상대가 대단한 작가라고 서로를 부추겼다. 에어드레말리즈 씨는 현대미술관에서 기획전도 하고 워크숍도 한 작가들이라고 소개했다.
▲ 산투르세의 벽화작업 니나 작가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산투르세(Santurce) 커뮤니티 경험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벽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 이안수
"당신을 미술관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를 에워싼 다양한 현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내일, 이 섬의 최서단, 마야구에즈(Mayagüez)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이 섬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방문 드릴게요."
"언제든지 방문 계획이 확정되면 알려주세요. 전 항시 미술관에 있을 것입니다."

#3

마야구에즈에서 돌아오는 날은 햇살이 유난히 뜨거운 일요일이었다. 니나 작가의 벽화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협업 작가인 아비(Abey Charrón) 씨가 쿨러백에서 맥주를 꺼내 내밀었다.

"라구나 너머 콘다도 지역에서 몇 개의 멕시코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가져다 준거에요."
"정말 이웃 간에 정이 넘치는군요. 커뮤니티를 아름답게 하는 예술가 친구의 작업을 알고 시원한 맥주 선물이라니. 이 동네는 정말 이웃 간 함께 사는 맛이 느껴져요. 휴일을 반납하고 벽화 작업을 하고 있는 니나 작가나 아비 작가의 헌신까지.."
"니나 작가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말릴 수 없는 열정이죠."

이 열정의 니나 작가에게 이 벽화작업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커뮤니티 주민의 삶을 드러내는 벽화 이 지역 사람들의 사연을 수집하고 사진가가 사진을 찍고 시인이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협업 작업의 결과물을 벽화로 노출한다.
ⓒ 이안수
"전 푸에르토리코의 현대 미술관(MACPR)에서 주최한, 지역 사회의 관계를 강화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둔 예술 프로그램인, 'El MAC en el Barrio('이웃 속 현대 미술관'이라는 의미)'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죠. 커뮤니티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예술가들이 예술적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전 이 지역(Alto del Cabro en Miramar/Santurce)의 벽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사연을 수집하고 제가 사진을 찍고 시인인 니콜(Nicole Cecilia Delgado) 씨가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협업 작업입니다. 저는 사진에 그 이야기의 인용구를 발취해서 텍스트로 배치해서 이미지를 완성하죠. 그 결과물을 이렇게 벽화로 노출하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저 자신에게도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변 세계와 친밀해짐으로써 창의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였다. 여러 인물이 게시되고 있었다. 집의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진 속의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집의 문들은 온 동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었어요. 우리는 파티를 열었죠. 건강한 파티였어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모두가 와서 먹었습니다. 그 시절은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어요. 젊은 시절, 나는 항상 노년에 대해 생각했어요. 내가 늙었을 때를... 즉, 노년은 항상 내 안에 있었어요."

이 할머니의 회상을 통해 온 동네가 한 집 같았던 내 어릴 적 고향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준비된 노년을 살고 있는 할머니의 자립과 존엄이 사진에서 배어났다.
▲ El MAC en el Barrio의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푸에르토리코 현대 미술관(MACPR)은 미술과 문화의 힘을 활용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El MAC en el Barrio(이웃 속 현대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을 2014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 이안수
다음날 바로 푸에르토리코 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마침 '10 Años de MAC en el Barrio(이웃 속 MAC 10년)'이라는 '이웃 속 미술관' 10주년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예술 프로젝트는 2014년에 시작되어 중단 없이 이어오면서 예술이 사람과 삶을 어떻게 연결하는 지를 망라하고 있다.

산투르세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을 통한 벽화작업이 도시 환경에서 단지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시각적 매력을 추가하여 도시 경관을 개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주민의 닫힌 문을 열게 하고 삶의 경계를 허물어 커뮤니티 속 각기 다른 층위의 사람끼리 접점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져 보였다. 현재의 보다 나은 삶을 넘어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생태환경 보전과 생물 다양성에 대한 논의와 실천으로 나아가는 커뮤니티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이 1층 미술관 모든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산투르세의 미술관과 예술가들, 그리고 이웃들은 예술이 개인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이렇게 입증해 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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