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그 남자가 세상을 흔들어 놓은 방법

김성수 2025. 6.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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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하나로 영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사로잡은 극작가

[김성수 기자]

35년간 영국에서 산 세월. 그 세월은 마치 오래된 포도주처럼 진하게 배어들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학교 보내고, 졸업 시키고, 이제는 다들 제 갈 길 가며 잘 살고 있다. 손주는 아직 없지만, 아직은 조용한 저녁이 좋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아니 자주, 한국이 그립다. 떡볶이 골목의 냄새, 지하철 안내 방송의 소음, 어딘가 모르게 서툰 친절까지.

그렇게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선 또 영국이 그립다. 기네스 맥주 한 잔에 담긴 애정 어린 냉소, 수줍은 정,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에도 네 계절이 드나드는 그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까지. 나는 아마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 '이중감정자'다. 몸은 하나지만 마음은 두 나라를 오간다. 그리고 그 감정의 중간 어디쯤엔, 셰익스피어가 앉아 있다. - 기자말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영국의 아이콘이자, 세계 문학사의 거대한 유령이다. 그리고 동시에, 최고의 밈(유행어) 생성기이기도 하다. 지금 SNS가 있었다면 그의 트윗은 아마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To tweet or not to tweet, that is the question."("트윗할까 말까, 그게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한 문장으로 전 세계 고등학생들을 괴롭힌 장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대체 어떤 남자였기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이토록 들볶고 있는 걸까?
 셰익스피어
ⓒ 위키백과
영국 사회를 뒤흔든 '글쟁이' 한 명

셰익스피어가 살던 16-17세기 영국은 지금으로 치면 신흥 강국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마치 요즘의 K-팝처럼 유럽 문화계에서 급부상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 바로 '전 국민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셰익스피어였다.

당시 영국사회는 계급이 뚜렷했다. 귀족은 귀족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살아야 했는데, 셰익스피어의 극장은 신기하게도 모든 계층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귀족들은 2층 특석에서, 평민들은 1층에서 서서 구경했다.

셰익스피어는 영리했다. 왕과 귀족들 비위도 맞춰주면서, 동시에 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풀어냈다. <햄릿>에서는 권력의 부패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젊은 사랑을, <맥베스>에서는 야망의 비극을 다뤘다. 현대로 치면 한 사람이 정치 드라마, 로맨스, 스릴러를 동시에 히트 시킨 셈이다.

영어를 '개조'한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의 진짜 위력은 언어에 있었다. 그는 무려 1700개가 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assassination(암살)', 'bedroom(침실)', 'eyeball(안구)', 'fashionable(유행하는)' 같은 단어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한국어로 치면 한 사람이 '개념글', '인싸', '득템' 같은 신조어를 1700개나 만들어서 모두 표준어가 된 격이다. 게다가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Break the ice(어색한 분위기를 깨다)" 같은 표현들도 그의 작품에서 나왔다. 셰익스피어가 없었다면 영어는 지금보다 훨씬 재미없는 언어였을 것이다.

영국사에 미친 '나비 효과'

셰익스피어는 영국인들에게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줬다. <헨리 5세>, <리처드 3세> 같은 역사극들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우리도 대단한 역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그게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특히 <헨리 5세>는 영국인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2차 대전 중에도 이 작품이 공연되며 영국인들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한 편의 연극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셈이다.

세계사에 던진 거대한 파장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독일의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나서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고, 러시아의 푸시킨은 그를 "우리 시대의 천재"라고 극찬했다.

심지어 소련 시절에도 셰익스피어는 '계급투쟁의 작가'로 해석되어 사랑받았다. <리어왕>은 봉건제의 몰락을, <코리올레누스>는 민중의 힘을 다룬 작품으로 읽혔다. 이쯤 되면 셰익스피어는 그냥 만능 해석기계다.

일본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란>(리어왕)과 <거미집의 성>(맥베스)으로 셰익스피어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K-드라마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지금,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에도 살아 숨쉬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요즘도 셰익스피어는 현역이다. 할리우드에서는 해마다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이 나온다. <10 Things I Hate About You>(내가 널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현대판이고, <She's the Man>(그녀는 남자다)는 <십이야>를 각색한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셰익스피어 열풍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뮤지컬로, <햄릿>은 연극으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과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수험생들은 원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뭐 그리 대단한가?

결국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뤘기 때문이다. 사랑, 질투, 야망, 배신, 복수... 이런 감정들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햄릿의 고뇌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의 그것과 닮아 있고, 맥베스의 야망은 승진을 꿈꾸는 직장인의 마음과 통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뭐, 부모님 반대에 부딪힌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영원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고 보편적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계속 읽히고, 공연되고, 사랑받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좀 더 쉬운 영어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랬다면 전 세계 학생들이 조금 더 행복했을 텐데 말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더니, 셰익스피어의 펜은 대포보다도 강했다. 한 사람의 글이 이토록 오랫동안, 이토록 광범위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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