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세상의 탐욕에 지칠 때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큰 사람들./ 창조란 가장 단순한 것으로/ 가장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박노해 시 ‘전통 방식의 고기잡이 안쪼’ 중에서.
세상의 탐욕에 지칠 때 동아시아 오지 마을을 순례하며 쓴 박노해 사진 에세이집 『다른 길』을 펴든다. “올해는 감자 수확이 좋지 않지만/ 라당의 여인들은 우울해하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밭을 오르내리면서도/ 소녀처럼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대화한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죠./ 풍년에는 베풀 수 있어 좋고/ 흉년에는 기댈 수 있어 좋고/ 우리는 그저 사랑을 하고 웃음을 짓는 거죠.’” (‘라당의 여인들’)

라당 사람들은 “험난한 땅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세상을 다 거느린 듯/ 느릿느릿한 곧은 걸음으로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칼라샤 여인의 걸음’ 중).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라당의 농부가 되면 좋겠어요./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마당에 모여 앉아’ 중)
가난하고 욕심이 없어서 거룩한 삶에 대한 경배가 시집 곳곳에 배어있다. 시인은 밀밭 사이에서 책 읽는 소녀도 만났다. 경건한 고요의 순간. “햇살이 부드럽게 기울 때쯤이면/ 누비아(15)는 당나귀에게 풀을 먹이며/ 밀밭 사이로 ‘걷는 독서’를 한다./ 들꽃의 향기와 밀싹의 숨결과 새의 노래가/ 낭송의 음경(音景) 속에 가만가만 스며든다./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삶을 읽고 세계를 읽고/ 자기 내면에 쓰여진 비밀스런 빛의 글자를/ 몸의 여행으로 읽어나가는 ‘걷는 독서’.” (‘밀밭 사이로 걷는 독서’)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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