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흔들리는 마음과 잘 사는 법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림웍스 제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내 친구 어둠>은 지난 2월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공개됐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화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을 위한 이야기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영리한 각본과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인 설계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극복이라는 허상을 깨고
<내 친구 어둠>의 초반부는 상당히 빠르게 전개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열한 살 소년 '오리온'은 현장 체험학습에 나서기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곧 인간처럼 현현한 어둠 그 자체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탐험에 나선다. 비슷한 줄거리를 차용하는 다른 각본이었다면 이 도입부만을 위해 2~30분을 투자했겠지만, <내 친구 어둠>은 다르다. 오리온이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는 데서 '어둠'을 만나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런 '급전개'는 바로 영리한 나레이션 사용 덕분에 가능했다. 주인공 오리온을 메타인지에 능한 캐릭터로 설정하여, 관객이 그를 파악하기 전에 오리온 본인이 자신의 결점을 늘어놓도록 만든 것이다. '보여주되, 말하지 말라(show, don't tell)'라는 영화 각본의 기본 원칙을 깨 버리는 선택이지만, 지금까지 오리온 같은 '겁쟁이' 캐릭터를 숱하게 봐 온 관객에게 본작의 나레이션은 시간을 끌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이터널 선샤인> 등의 각본가로 잘 알려진 베테랑 극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빠른 전개를 안고 오리온은 어떻게 변할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가리지 않고, 주인공은 결국 성장해야 한다. 영화가 시작한 시점의 주인공과 끝날 시점의 주인공이 거의 같은 사람이어서는 서사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발목을 잡던 내면의 결함을 '극복'하고 한결 더 나은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내 친구 어둠>은 이 암묵적인 규칙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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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친구 어둠> 스틸컷 |
| ⓒ 넷플릭스 |
그렇다면 오리온은 어떻게 해야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 친구 어둠>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단일한 '극복의 순간'이라는 허상을 깨 버리지만, 동시에 수용과 공존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밤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가 순식간에 멸망 직전에 이르자, 오리온은 어둠과 빛이 선과 악처럼 나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순환하는 하나의 연속체임을 알게 된다. 어른이 된 오리온이 자기 딸에게 들려주던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던 '어둠과의 모험'은 이야기에 난입한 딸의 도움으로 어둠을 되돌려 놓는 데 성공한다. 혼자서는 결코 얻어낼 수 없었던 해피엔딩이 두 세대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릴 적 오리온과 거의 똑같은 공포를 지닌 딸의 존재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근원적인 공포를 암시한다.
자칫 허무한 결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오리온이 박멸하고자 했던 공포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그대로 자신의 딸에게 이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려워도 그냥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내 친구 어둠>은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으며, 우리는 이 태곳적의 감정과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일 뿐만 아니라, 본작의 영리한 심리학적 설계가 돋보이는 결론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불안과 같은 근원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부정, 퇴행, 합리화 혹은 왜곡과 같은 무의식적 조치를 취한다고 본다. 이를 일컬어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방어기제의 존재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것이 '진실하지 않은' 방식이고 무조건 위기에 직면하는 것만이 '옳은' 삶의 방식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심리학은 이러한 방어기제가 악한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과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둠과 두려움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되살려내 안식을 찾은 오리온처럼, 현실의 인간 또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느리고 팽팽한 심리적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셈이다.
<내 친구 어둠>은 빠른 재치 있는 전개 방식을 택해 영화의 초중반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다. 동시에 심리학적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절망적이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면서 명실상부 '아이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동화'로 거듭난다. 격변하는 사회만큼이나 혼돈과 불안정으로 가득한 개인의 심리가 당연시되는 요즘, 자꾸만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내 친구 어둠>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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