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안내자 제인 오스틴

김성수 2025. 6. 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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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나라에서 살아보니, 그녀는 조용한 혁명가였다

영국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5년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낯선 땅에서의 삶이 막막했지만, 어느새 나는 이곳에서 한 여성의 남편이자 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한 사람의 '이방인'에서 '영국 속 한국인'으로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아이들은 영국의 학교를 다니고, 영국식 농담을 주고받고, 나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영국인으로 살아간다.

그 세월 동안 나를 안내해준 이름이 있었다. 거창한 정치가도, 유명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바로 200여 년 전의 한 시골 여성, 제인 오스틴(1775-1817)이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제인 오스틴
ⓒ 위키피디아
두 나라 사이에서, 나는 '이중감정자'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영국 오래 사셨으면 이제 한국 그립지 않으시겠어요?" 하지만 정작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한국이 그리워진다. 고등어구이 냄새가 배인 골목길, 찻집에서 들려오는 한국 노랫말, 아파트 단지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조차 그립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돌아가면 또 영국이 그리워진다. 차분한 일상, 격식 속 유머, 잿빛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런 나를 두고 나는 스스로 '이중국적자'가 아닌 '이중감정자'라 부른다. 마음은 늘 두 나라 사이에 있다. 양쪽 모두를 사랑하면서도, 어느 한쪽에서도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이방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런 내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제인 오스틴이었다. 아니,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었다.

책 속 인물, 현실에서 마주치다

오스틴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땐, '시대극'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뻣뻣한 복식과 예의범절,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무도회, 그리고 잔잔한 일상.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인물들이 점점 내 주변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가령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처음엔 차가워 보이고 건방진 인물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감정을 서툴게 표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회의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말없이 차를 마시는 영국 남성들. 펍(선술집)에서 말보다 눈짓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어느새 나는 '다아시형 인간'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오스틴은 이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게 비튼다. 그녀의 풍자는 가볍고, 유머는 절묘하다. 영국식 '건조한 유머'에 처음엔 웃을 타이밍을 몰랐던 나도, 이제는 "멋지다!(Brilliant!)"는 말로 받아 친다. 어쩌면 오스틴이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영국어는 '위트'였을지도 모른다.

결혼, 낭만과 현실 사이
 제인 오스틴 박물관
ⓒ 위키피디아
오스틴 소설의 핵심은 '결혼'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리는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설득>이나 <맨스필드 파크> 속 여주인공들은 현실 앞에서 복잡한 선택을 한다. 사랑이냐, 안정이냐. 자아냐, 생존이냐. 이건 20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런던의 집값을 보면,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한 감정이 아니다. 금융과 계약, 담보와 대출이 함께 얽혀 있는 현실이다. 제인 오스틴 시대엔 남편이 집을 물려줬고, 오늘날엔 은행이 모든 걸 쥐고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결혼이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결정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아이들은 오스틴식, 나는 절충식

아이들이 영국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는 걸 보며, 오스틴의 유산을 실감했다. 예의, 품위, 배려. 말할 때는 조심스럽게, 사과는 철저하게. 우리 아이들은 "I'm terribly sorry"(정말 죄송합니다)를 자연스럽게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심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아이들은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그 우아함과 한국식 직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녀교육, 학교상담, 사회생활… 매일이 '센스 앤 센서빌리티'였다. 오스틴은 내게 문학이 아니라 생활의 지침서였다.

딸과 오스틴을 두고 벌인 토론

"아빠, 오스틴 작품은 결국 다 결혼으로 끝나요. 진짜 페미니즘이에요?"

어느 날, 딸이 물었다.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좋은 결혼'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말하려 했던 건 '결혼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선택할 권리'였다. 당대 여성에게 삶을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 시대에, 그녀는 글을 통해 여자도 생각하고, 판단하고, 거절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기를 들지도, 연설하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명확한 혁명가였다.

오스틴의 흔적은 지금도 영국 곳곳에

BBC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오스틴 원작 드라마를 방영한다. 차우톤과 배스는 오스틴 순례지로 유명하고, 축구보다 오스틴 드라마를 몰래 즐기는 남성들도 있다. 이런 풍경은 오스틴이 여전히 영국사회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자기 비하적인 유머, 서툰 연애, 사회적 압박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 브리짓은 21세기의 엘리자베스 베넷이고, 오스틴의 손녀 같은 존재다.

손주에게 물려주고 싶은 한 권의 책

나는 지금, 영락없는 '영국 할아버지'다. 아직 손주는 없지만, 언젠가 그 아이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오스틴의 책 한 권을 건네 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얘야, 이건 너희 할아버지가 살아낸 이야기와 아주 많이 닮았단다."

그리고 덧붙이겠지.

"그러니 너무 '오만'하지도 말고, '편견'에 갇히지도 말고, 너만의 '엠마'를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내 삶을 지탱해준 오스틴. 진정한 혁명은, 그렇게 고요하게 다가온다. 그녀가 씨앗을 뿌렸던 이 나라에서, 나 역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서 있다.
 제인 오스틴의 책 표지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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