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뛰쳐나온 47만여 명의 학생들... 이 역사는 왜 잊혔나
[조한진희]
역사는 선별적으로 기억된다.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하고 교사 1500여 명이 해직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해 약 47만여 명의 중고생이 전교조 교사 해고에 맞서 방학거부, 점거농성, 단식투쟁, 거리시위를 했다는 것을 사회는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와 교육 당국으로부터 탄압과 괴롭힘, 징계를 당하고 일부는 구속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구 경화여고에 재학 중이던 김수경은 학생회와 전교조 지지 활동을 이유로 학교로부터 탄압을 겪다가, 유서를 남기고 영남대 옥상에서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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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수열사추모제 참교육의 불꽃 김철수열사 추모제 |
| ⓒ 김철수열사추모사업회 |
고운(고등학생운동)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는데, 학교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를 요구하며 입시 위주의 비인간적 교육을 거부했다. 사학비리척결과 성폭력·성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고자 했고, 전교조가 참교육을 견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전교조 사수를 주요한 투쟁으로 가져갔다. 직선제 학생회를 쟁취하고 자주적(자율적)학생회를 건설하고, 보충 자율학습 폐지와 체벌금지를 요구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학살자 전두환 처벌!"을 외치고, 서로를 조직해서 점점 더 많이 거리로 나와 "노태우를 당선 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고 요구하고, "김영삼 퇴진!"을 외쳤다. 그들은 10대가 일어나면 세상을 변혁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이었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
이런 역사가 왜 거의 기억되지 않았을까? 고운을 했던 이들은 대체로 수 십년 간 묻어두고 지냈다. 소환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 성과를 내지 못한 운동이라는 좌절감,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이 한 켠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자긍심으로 기억하더라도, 80년대 '대학생운동'을 했던 일부 세력들이 민주화 역사를 독점하는 태도에 질려서 침묵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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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교육선봉중고생 1990년대 초반 노동자대회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대오 |
| ⓒ KSCM |
그리고 거의 4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 고등학생운동을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다. 나는 고운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자책감과 책임감 위에서 이 책을 기획했다. 책을 준비하며 다양한 고운활동가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낯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희끗한 머리와 주름진 50대 얼굴 사이로 10대 시절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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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생운동사 고등학생운동사(동녘,2025) 책표지 |
| ⓒ 동녘 |
그리고 무엇보다 기획자로서 나는 애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갖지 않으며 투쟁했던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개인의 유배된 기억을 넘어서 사회적 기록으로 만들면서 당시의 고운이 한국 사회에 무엇이었는지 묻고자 했다. 즉 고운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성찰과 토론, 비판적이고 객관적 평가가 이어지길 바랐다. 이를 통해 역사와 운동의 전망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함께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리고 고운을 하다가 트라우마를 갖게 되거나, 열사가 되거나, 열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 여전히 과거의 혼돈에 갇혀있는 동지들의 삶과 죽음이 조금 이나마 제자리를 찾게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치열한 투쟁이 좌절과 트라우마로 남았을 때
고운 이후, 30년 넘게 늘 생각하는 게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진심과 치열하게 투쟁한 결과가 때로 상처와 고통 혹은 질병이나 죽음으로 남는 현실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자주 골몰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주제로 토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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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2019년 개최한 <포럼: 사회운동활동가건강권을 묻다> 행사 사진 |
| ⓒ 박종필추모사업회 |
그리고 연결해서 고등학생운동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게 된 배경에는 옛동지들과 함께 이제 그만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컸다. 물론 고운을 자신들의 전사(前史)로 설정한 청소년인권운동진영에 비판적 유산으로 이어 내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 '386세대' 혹은 '86세대'가 독점한 민주화 서사에 균열을 만들며, 우리 사회 민주화는 고운을 비롯한 여러 민중들이 함께 밀어온 역사의 수레바퀴였음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도 큰 이유였다.
응답하라, 운동사회
사회운동진영 혹은 운동사회를 일종의 생태계를 지닌 공동체라고 한다면, 운동사회가 '응답' 할 수 있을까? 고운세대들이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자신의 삶과 투쟁에 관해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운동사회만이라도 고운을 함께 기억하고 호명하는 것,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 고운은 무엇이었는지 함께 토론 해 볼 수 있을까. 이는 고운을 사회적으로 의미화 하는 과정이고, 이게 바로 고운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사회적 회복에도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또 한편 고운이 소멸한 원인을 두고,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흔히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고운을 계급투쟁을 위한 공장 활동의 배출구로 보거나, 활동가의 조기교육과 생산기지로 상정하거나, 정파의 세력 확장 도구로 고운에 접근했던 조직들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 섣부르게 운동에 개입하고, 거칠게 조직하다가 무책임하게 떠난 사례들이 남긴 영향과 타격도 일부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고운의 생명력이나 조직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즉 고운의 소멸 원인에는 운동 사회가 가진 한계나 모순도 존재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현재에도 유효할 것이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 위에서 발 딛고 있고, 지나간 오류를 직면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반복을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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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운 출신 노동자가 많았던 갑일전자 노래패 힘찬울림 공연사진 고운을 마친 이후 공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 90년대 초반 구로공단 공장에는 많은 고운 출신 노동자가 있었다 |
| ⓒ 권정기 |
운동 사회가 함께 고운을 기억하고 호명하고 의미화 한다면, 다른 많은 고운 활동가들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 저들처럼 반짝이던 투쟁 경험으로 서술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게 사회적 치유이고, 연대이며,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고운을 했던 이들이 좌절의 기억 속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한, 고운 역사도 계속 어두운 역사로 현재 진행형 일 수 밖에 없다. 운동 사회가 공동체성을 발휘한다면, 유배 시켰던 개인의 고립된 기억이자 '미완의 운동'으로 남아 버린 고운의 역사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조한진희님은 <고등학생운동사> 기획자이자 공저자이며, 다른몸들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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