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패배에서 배워라

“승리를 통해선 조금을 배우지만 패배를 통해선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누군가 페이스북 ‘담벼락’(게시판)에 쓴 글이다. 근데 국민의힘의 의총을 보면 그렇게 처참하게 지고도 거기서 배울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개표 결과는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이제라도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탄핵에 반대한 후보를 내세운 것 자체가 난센스. 근데 그 후보가 다시 당의 대표로 나설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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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참하게 지고도 반성 없는 국힘
친윤, 혁신 거부하며 기득권 집착
이권 보장해줄 ‘숙주’ 찾기 안간힘
결국 당원들이 다시 나설 수밖에
」
둘째, 당내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 당원이 선출한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쫓아내고, 당원이 선출한 후보도 제멋대로 내치려 한 사람들. 이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한 그 당에선 그 어떤 혁신도 불가능하다.

셋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것. 이준석 후보의 지지층과 김문수 후보의 보수층 사이엔 탄핵의 강보다 더 넓은 강이 가로놓여 있다. 세대연합을 복원하지 못하면 대선 필패의 구도가 영원히 고착될 것이다.
탄핵에 반대한 것, 민주절차를 무너뜨린 것, 보수를 분열시킨 것. 이 세 가지에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 국힘의 주류인 ‘친윤’ 세력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당 안에서 주류로 남아 위세를 부린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개혁안을 제시하며 이를 당원 여론조사에 붙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다수가 이를 거부했다. 자기들이 당원들 뜻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스스로 안다는 얘기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에서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외쳤던 청년을 대표로 뽑은 것도 국힘의 당원들이었고, 윤석열의 뜻을 거슬러 비대위원장을 다시 대표로 세운 것 역시 그 당의 당원들이었다. 적어도 당원들의 다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전략적 선택을 번번이 뒤집어 기어이 상황을 원상으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의 미래도, 보수의 미래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들의 현재다. 대권은 양보해도, 막대기만 꽂아놓아도 당선되는 내 자리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이젠 내세울 ‘인물’도 없다. 그렇다고 기득권을 놓을 수는 없으니, 먼저 친윤 원내대표를 뽑고, 그를 통해 친윤 비대위원장을 임명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자기들이 계속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계산일 게다. 물론 여론의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그래도 끄떡없다. 어차피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의 의원들. 그러니 여론에 둔감해도 아무 문제 없다. 그들의 철학은 확고하다. “1년만 지나면 다시 뽑아주더라.”(윤상현)
3년 동안 지도체제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가. 이준석 대표, 주호영 비대위, 정진석 비대위, 김기현 대표, 한동훈 비대위, 황우여 비대위, 한동훈 대표, 권영세 비대위, 김용태 비대위. 그것도 모자라 또 비대위란다.
비상이 곧 정상인 당에서 유일한 ‘상수’는 친윤 주류. 결국 이 사람 들이고 저 사람 내치고, 이 사람 세우고 저 사람 내리고, 아무리 지도부를 바꾼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앉아 당을 이끌어온 것은 그들이다.
예상된 참패가 벌써 몇 번째인가. 당을 수렁에 빠뜨리고도 반성도, 사과도 없다. 반성을 해도 그냥 ‘모두가 잘못했다’는 식이다. 결국 우리에게‘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얘기다. 원래 연대책임은 무책임이다. 당에 뿌리박은 ‘이해의 공동체’. 이 이권 카르텔이 그때그때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 줄 숙주를 간택해 살아가다, 숙주가 죽어버리자 그 몸에서 빠져나와 기생할 또 다른 숙주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그것을 인위적으로 돌려놓으려 일을 망쳐 온 게 그들이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마땅한 숙주를 찾지 못하면 흘러간 대선후보를 재활용하려 할 게 빤하다.
어차피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터. 결국 다시 한 번 당원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갈등을 대충 봉합하고 넘어가는 것은 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연장일 뿐이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싸움이다. 다만 그 갈등이 계파싸움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그 몹쓸 싸움이 국민의 눈에 혁신을 위한 의지와 원칙의 표현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그 싸움에 ‘짜증’ 대신에 ‘기대’를 품게 될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그동안 보수의 전략적 선택이 번번이 실패로 끝난 것은 결국 윤 대통령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당에서 사라졌다. 참회와 혁신 위에 당원들의 총의로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새로운 지도체제를 세워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2030 세대의 표심이 심상치 않다. 그 경향은 점점 강화될 게다. 이미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보수는 아마도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할 거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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