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양인이 활쏘기를 배우면서 알게 된 삶의 지혜

정진영 2025. 6. 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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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철학 교수 오이겐 헤리겔(1884-1955)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있던 중 도호쿠 제국대학의 초청으로 1924년부터 29년까지 객원교수로 일하며 일본인 스승으로부터 활쏘기를 배웠다.

한 서양인이 일본에서 활쏘기를 배우는 과정은 과녁을 맞히겠다는 목표도 잊고 채, 오직 각 단계마다 스승이 안내하는 길로 직접 들어가 보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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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활쏘기로 체득한 배움의 길... 오이겐 헤리겔의 <마음으로 쏘다, 활>을 읽고

[정진영 기자]

독일인 철학 교수 오이겐 헤리겔(1884-1955)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있던 중 도호쿠 제국대학의 초청으로 1924년부터 29년까지 객원교수로 일하며 일본인 스승으로부터 활쏘기를 배웠다.

<마음을 쏘다, 활>(2012년 3월 출간)은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에 관한 5년 동안의 경험으로 체득한 앎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서양인이 일본에서 활쏘기의 대가로부터 기예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활쏘기 명인은 성급하게 순서대로 활 쏘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는다. 숨을 들이쉬고 멈추며 내쉬는 호흡 연습부터 할 것을 요구한다. 과녁을 보면서 활을 쏘는 단계는 호흡이 편안하게 될 때까지 다음 단계는 아직 배울 수 없다.
 <마음을 쏘다 활> 책을 읽고 좋았던 내용을 필사한 것.
ⓒ 정진영
우선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승이 보여주는 시범을 신중하게 모방하는 것뿐이다.

스승은 장황한 설교와 설명을 피하고 단지 간략한 지침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며 제자들에게 어떠한 질문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67쪽)

<마음으로 쏘다, 활> 오이겐 헤리겔, 정창호 역, 걷는책

스승은 단계마다 체득해야 할 부분에만 몰입해 집중적으로 연습할 것을 요구한다. 스승은 단호하다. 스승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제자가 계속 잘못된 발사를 하면, 제자의 활을 가지고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러면 신기하게도 활이 눈에 띄게 좋아져 마치 활이 이전과 다르게 유순해지고 영특해지는 듯하다고 말한다.

요즘은 다양한 분야의 원데이 클래스를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나절 정도 시간과 비용을 내면 손쉽게 완성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연습과 정성을 쏟지 않아도 새로운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진득하게 배우고 스스로 체득하는 경험을 하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한 서양인이 일본에서 활쏘기를 배우는 과정은 과녁을 맞히겠다는 목표도 잊고 채, 오직 각 단계마다 스승이 안내하는 길로 직접 들어가 보는 것 뿐. 지름길은 없다.

그저 선생님이 보여주는 동작을 자세히 관찰하고 모방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과정에서 활쏘기뿐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모범적인 관계를 깨우쳤고, 스승을 믿고 스스로 배워나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성취나 결과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다. 서양인의 깨달음을 통해 나도 배움과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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