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입대제로 전환하면 북한은? 북쪽의 주목할 만한 조짐

정욱식 2025. 6. 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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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의 진짜안보] 징병에서 자원입대로(하) : 유사시 무력통일론 내려놓자

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은 대화와 평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기자말>

[정욱식 기자]

 5월 26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로 입영하는 장병들이 병무청 '현역 입영문화제(청춘 예찬 콘서트)'를 관람 후 입대 준비를 하며 부모님께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선 글에서 자원입대제(모병제)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도 우려는 나온다. 국방비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우려, 자원입대가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 남북의 군사적 대치에 따른 안보적 우려 등이 대표적이다.

자원입대제 도입과 더불어 필자가 제안하는 정규군 병력구조는 병사 15만 명, 간부 15만 명 등 총 30만 명이다. 이렇게 현행보다 병력을 20만 명 정도 감축하면 국방비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병사와 간부의 처우를 크게 개선해도 전체 인건비는 현행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고, 인건비를 제외한 병력운영비와 각종 부대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원입대가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라고 본다. 우선 병사의 규모가 현재 약 30만 명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면에, 성별과 관계없이 자원입대가 가능해져 입대 자원은 현재보다 2배로 늘어나게 된다.

직업 선택에 있어 개인의 취향도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의 직업 선호도에서 군인은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21년 2월에 발표한 '2020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선호직업 가운데 군인이 4위를 차지했다. 2023년 조사에선 중학생은 6번째로, 고등학생은 3번째로 군인을 뽑았다.

조선의 정규군이 128만 명?

가장 큰 우려이자 반론은 '조선(북한)의 위협 대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것도 다방면에 걸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선의 병력수이다. 한국 국방부는 2016년 이래 조선의 병력을 128만 명으로 '추정'해 왔다. 이는 한국군보다 2.5배나 많은 수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 감축을 전제로 자원입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안보를 무시한 철없는 발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탁성한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019년에 작성한 '북한군 실제 병력수 추정 및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2018년 조선 정규군의 규모를 104만 8000명으로 산출했고 2018년 이후에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통계청이 추계한 조선의 16세 남성인구수에 징집률 70%를 적용한 결과이다.

또 정영철 서강대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2008년 실제 병력은 50만~75만 명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미야모토 사토루 일본 세이가쿠인대 교수도 '조선인민군의 군사조직과 군사력'이라는 논문에서 조선군 병력 규모를 "70만 2372명"이라고 추산했다. 두 교수의 연구는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직접 참여해 국제기준에 따라 이뤄진 2008년 인구조사 통계자료에 근거해 작성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조선은 2021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노동력 확보와 군의 정예화를 도모하기 위해 남성은 9년에서 7년으로, 여성은 7년에서 5년으로 복무기간을 단축했다. 또 조선에서도 어린이와 청년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에 노령층의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조선의 군 복무기간과 입대 대상자의 인구는 줄어들었다. 조선의 병력이 여전히 128만 명이라는 국방부 추정에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에 집중하고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여 인민 생활 향상과 경제 건설에 투입하겠다는 '병진노선'을 13년째 유지 중이다.

유사시 무력흡수통일론을 내려놓으면

조선의 병력이 128만 명보다 훨씬 적더라도 조선의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핵과 미사일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최근 일부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동시에 전쟁이 발발하거나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해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한미동맹의 유사시 목표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표를 내려놓으면 우리에게도 이롭고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에도 이로운 '이기이관(利己利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달라진 김정은과 돌아온 트럼프> 참조).

기실 한국이 징병제를 고수해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려는 데에는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근저에 깔려 있다. 유사시 조선을 점령하고 안정화하는 데에는 상당한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획은 우리를 이롭게 하는 변화를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5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유지할 수 있는 병역자원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지속가능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자원입대제는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는 것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자원입대제가 징병제보다 동기 부여와 전문성 제고에 있어서 우월할 뿐만 아니라 무기·장비의 고도화·첨단화·무인화 추세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군사적 합리성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보다 더 우월한 외부의 위협에 대한 억제 능력의 구비를 가능케 하면서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론화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1990년대 이래 한국의 역대 정부는 흡수 통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도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유사시 무력흡수통일론은 유지·강화해 왔고 그 능력도 키워왔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통일을 포기하고 남북 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한 핵심 빌미로 작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이 자원입대제를 도입하면서 병력을 30만 명으로 축소하는 것은 조선에 흡수 통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이재명 정부, 변화를 통한 접근을
 2024년 10월 15일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 연합뉴스
예단하긴 어렵지만, 최근 조선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4년 10월 7일에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다"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라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이 발언 직후에 나온 물리적인 조치이다.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철도·도로를 폭파하고 그 위에 방어벽을 설치했고, 화살거리고지 등 비무장지대 일부에도 방어벽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한 것이다. 이는 남북교류협력의 재개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이다.

동시에 그 군사적 의미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쪽이든 무력 점령을 시도하려면 전차와 장갑차 등을 앞세워 지상군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은 유사시 축선에 해당하는 경의선·동해선·화살거리고지 등에 방어벽을 설치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미연합군의 '북진'을 어렵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조선인민군의 '남진'도 어렵게 만든다. 김정은은 한미동맹의 "북침" 가능성에 만반에 대비를 해야 하고 무력통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발언을 뒷받침하는 물리적인 일부 조치를 취한 셈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동시에 '유비무환'과 '과비유환'을 구별할 지혜도 필요하다. 단호하고 현명한 대비는 필수적이지만 과도하고 무분별한 대비가 오히려 우환을 키우게 된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원입대제 도입을 통해 정예 군대를 만드는 것은 전자에 해당하고,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유지·강화하는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 정부가 사회적인 공론화를 거쳐 자원입대제 도입과 유사시 무력통일론 배제를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선택적 변화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또 이러한 변화는 폭망한 남북 관계에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기실 한국의 유사시 무력통일론과 조선의 전시 무력편입론은 '통일 지향적인 특수 관계의 가장 폭력적인 발현'이다. 이제는 양측 모두 이를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다. 조선은 저울질하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변화를 통해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평화공존의 토대로 삼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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