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보수정당, 경제위기 극복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난 대통령선거는 대한민국 보수 정당과 보수 유권자에게 치를 준비가 되지 않은 힘든 시험 같은 것이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파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선거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로에 빠진 대한민국 보수가 암중모색하는 어려운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조사에서는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분류한 사람이 응답자의 38%를 차지해, 진보(33%)나 중도(29%)보다 많았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분류한 사람이 38%나 된다는 것은 보수 정당에는 매우 중요한 희소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보 성향 응답자(86%)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반면, 일부분의 보수 성향 응답자(69%)만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중도층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58% 대 28%로 김문수 후보를 압도했다. 보수는 중원 싸움에서 참패했을 뿐 아니라 소위 ‘집토끼’들을 효과적으로 지키지도 못한 것이다.
투표를 한 사람들조차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김문수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 중 28%만이 “내가 좋아하는 후보여서 이번 선거에 꼭 당선되기를 바랐다”고 응답한 반면 65%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고 선택의 이유를 들었다. 이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61%가 “좋아하는 후보여서” 투표했다고 답변한 것과는 명백히 대조된다.
한국의 보수 정당이 길을 잃은 것은 가깝게는 지난 12월 3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보수 정당의 가장 핵심적인 슬로건은 “법과 질서”(Law and Order)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을 진정한 보수가 이해하기는 어려우며, 더 나아가 법원 폭동에 가담하거나 동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수라 부르는 것을 용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는 여전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하나의 질문, 계엄에 대해 제대로 답하는 데 실패했다. 전체 응답자의 76%, 보수 성향 유권자의 59%가 계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실을 보면 이런 ‘전략적 침묵’이 선거 전략으로서도 실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정당이 길을 잃은 것은 멀게는 이명박 정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는 단순히 박정희의 전통을 잇는 반공권위주의적 보수, 국가개발주의적 보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주의적 보수, 자유주의적 보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의 보수는 자유와 시장, 심지어 안보와 반공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보수 정당뿐 아니라 우리 정치도 꼭 그만큼 퇴보했다.
이번 조사 응답자들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로 압도적으로 많이 꼽은 것은 “경제 위기 극복”이었다. 보수 정치가 출발점으로 돌아갈 각오가 되어 있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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