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금융 안정' 딜레마, 금산분리 향방은?
"글로벌 경쟁 막는 규제 풀어야"
새 정부는 소비자 보호에 '방점'
전면 완화보다 점진적 허용할 듯

은행권이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금융 안정'과 '신사업 개척'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다.
은행권은 수익 다변화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지만, 이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시장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신중한 태도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과 안정의 갈림길에서 이 정부의 금산분리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이달 중으로 금융권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건의 사항을 이재명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은행연합회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 실무자는 이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할 요구 사항 구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이 정부가 지난 5일 구성한 인수위원회 성격의 조직으로,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만큼 조직 개편과 정책 마련 등 정부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는다.
주요 내용으로는 그동안 은행권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던 '금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금융 산업으로의 진출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 ▲가상자산 관련 사업 진출 ▲투자일임업 및 신탁 관련 제한 완화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요구사항의 배경으로는 은행권이 이자 이익 위주의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현행법상 비금융 사업으로 확장이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업계에 의하면 은행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 중심의 이자수익 모델로는 더 이상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기조로 돌아섰고, 금융업이 디지털 전환기를 맞으면서다.
그러나 현재 은행이 여·수신 등 전통적 업무를 제외하고 새로운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자회사로 지배하지 않는 이상 최대 5%까지만 보유할 수 있고, 은행은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출자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금산분리의 본 취지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막기 위함이었으나, 이같은 규제가 금융권의 신사업 진출에 걸림돌이 돼 금융산업 전체의 발전을 막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한 이익 확대를 넘어 은행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동안 국내 은행들은 과도한 규제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 유수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금융 부수 업무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역시 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모양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금산분리 완화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기류는 은행권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 분리,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등을 공약하며 '금융 안정'에 무게를 둬왔다.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제도적 보완을 통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 기조로 풀이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정부가 관련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하는 대신 점진적으로 부분 허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비교적 작고, 신산업 육성이라는 명분이 뚜렷한 분야부터 규제의 빗장을 조금씩 푸는 방식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기업형 벤처캐피탈이나 보험업 등 특정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 논의가 우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6월까지 금융지주사의 핀테크 출자 한도를 기존 5%에서 15%로 상향 조정하려는 계획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정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권의 혁신 요구와 정부의 안정 우선 원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갈지가 관건"이라며 "국회의 입법 동의 과제도 남아있는 만큼, 팽팽한 논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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