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AI커닝' 허락한 컬리 "개발자, 코딩시험 챗GPT 써도 된다"

국내 이커머스 스타트업 컬리가 개발자 공채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코딩 시험을 신설한다. AI의 코딩 성능이 날로 발전하는 만큼 이를 활용하는 개발자의 능력도 직무 역량으로 간주하겠다는 취지다.
무슨 일이야
10일 IT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지난달 22일부터 시작한 개발자 공채 과정에서 서류 통과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코딩 테스트에 챗GPT 등 AI 챗봇 사용을 허용할 계획이다. 코딩 시험에 AI 사용을 허가한 것은 컬리 설립 이후 처음이다. 기획 등 비개발자 채용 과정에도 생성 AI 활용 역량을 평가할 방침이다. 전 직원들의 AI 사용을 독려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 위해 컬리는 올해 초부터 AI 활용에 관한 사내 교육도 제공해왔다.
이게 왜 중요해
컬리의 시도는 국내 대형 IT기업인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가 코딩 테스트에 AI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코딩 테스트는 개발자의 기본기를 가늠하는 시험이다. 마치 통역가를 선발하기 위한 필기시험에 번역용 AI를 허용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IT업계에선 AI로 코딩 테스트를 보는 것을 일종의 ‘커닝’ 행위로 간주해 왔다. 지난 2월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 로이 리(21)는 코딩 AI인 ‘인터뷰 코더’를 자체 개발한 뒤 아마존의 코딩 테스트를 치러 합격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마존은 채용을 취소했고, 로이 리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대학은 그에게 1년 정학 처분을 내렸다. 이런 금기를 깨면서까지 컬리가 AI를 시험에 도입하려는 이유는 뭘까. 컬리 관계자는 “AI 활용 의지도 개발자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 (AI를) 전격 허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곳은 어때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올해 초 직군과 상관 없이 업무 전반에 AI를 전면 도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컬리처럼 채용 시험에 AI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신규 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이커머스 인사 담당 임원은 “당근마켓은 인사관리(HR) 피벗(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며 “정규직 개발자를 쉽게 자를 수 없으니, 이들의 직무를 전환해 고용 부담을 덜어내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AI 코딩 실력 얼마나 좋아졌길래?
AI의 코딩 실력은 이미 1~3년 차 주니어 개발자를 넘어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초급 코딩뿐만 아니라 어렵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스노우플레이크 서밋’에서 “AI 코딩 실력이 이제는 전문가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에 따라 기업이 개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개발자들도 기획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두현 현대오토에버 상무는 “코딩 테스트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상품을 왜 만들고, 소비자가 뭘 원하는 지 모르면 생산성이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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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도 변화 조짐
코딩 교육업체 제로베이스는 올해 ‘자바’ ‘C++’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기본 강의 기간을 종전 1개월에서 2주로 줄이고, 코딩 실습을 포함한 정규반은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할 방침이다. 나머지는 코딩 AI 활용법 강의로 채울 계획이다. 제로베이스를 운영하는 데이원컴퍼니의 최상아 팀장은 “수강생들 취업 후기를 살펴보면 면접에서 개발 지식을 묻는 비중은 줄고, AI 활용 능력을 짚어내는 질문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보올림피아드 준비생, 과학고 입시준비생 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코딩학원을 운영하는 디랩은 대치동, 목동, 대구 수성 등 27개 지점에 ‘AI 코딩 특강’ 과목을 신설했다. 오는 9월부터는 정규 과목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송영광 디랩 대표는 "개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강사들의 우려가 있지만, AI라는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강의 커리큘럼을 바꿨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비개발자들의 AI 코딩 교육 수요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평소 쓰는 말(자연어)로 AI에 명령을 내리면 앱을 개발할 수 있는 ‘바이브 코딩’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사내 코딩 교육업체 데이원컴퍼니에 따르면 전체 강의에서 코딩 AI 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19.6%에서 지난해 80%, 올해 4월 90.4%까지 늘었다.
IT업계에선 개발자 채용 시장이 양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를 잘 다루는 개발자의 몸값은 올라가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개발자는 도태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AI 스타트업 플레이모어의 김진중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오히려 AI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주니어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hyeo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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