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농정 실패' 답습하지 않으려면
[김호]
새 정부는 농정분야 선거공약에서 '식량주권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선 기간 농민단체·시민단체가 요구한 개혁 과제를 수용한 것입니다. 식량주권법 제정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을 보완하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전 정부에서도 식량주권 확보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기초 식량을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정책목표와 정책 수단의 결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의지도 없었습니다.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문서로만 남아 있습니다. 식량주권법 제정의 농정공약을 정책화해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책목표와 정책 수단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또 정책분석, 정책 결정, 정책집행, 정책평가가 필수적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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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즈음의 들녘 논자락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간다(자료사진). |
| ⓒ 박희종 |
최근 일본의 쌀 파동을 보면 식량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쌀 재배 면적을 감축해 공급 부족 때문에 쌀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다시 쌀 재배 면적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이전 정부에서 쌀 재배 면적을 강제로 감축하겠다고 해 농민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즉시 중단시켜야 합니다.
식량주권법은 양곡관리법을 전부 개정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공약에는 양곡관리법 개정도 함께 있습니다. 식량주권법의 취지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양곡은 쌀,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와 고구마 등 식량 작물을 포함한 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새 정부가 개정하고자 하는 양곡관리법은 식량주권법과 중복된 내용이 많습니다. 사전 조치로 직불금이라는 인센티브 지급으로 다른 식량 작물 생산을 유도하고, 사후 조치로 시장격리라는 정책 수단을 도입하는 것은 공통 내용입니다.
식량주권법은 식량자급률의 향상을 정책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연도별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정하고, 정책 수단으로서 주식인 쌀 가격의 안정적 유지와 보리, 밀, 콩, 옥수수 재배에 대한 직불금을 더 올리는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이전 정부에서 전략 작물이라고 규정한 밀, 콩, 옥수수에 보리를 추가해 생산량 증가를 도모하고, 가루 쌀은 정책 대상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직불금은 일본의 30%에서 50%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일본 정책을 베낀 전략 작물이라는 용어도 식량 작물로 바꿔야 합니다.
연도별 식량자급률 목표치 달성 정도와 추진 전략에 대한 정책평가를 법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정책평가의 목적은 정책 결정과 집행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 과정상의 책임성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평가 영역은 정책목표가 바람직했는가, 정책 수단은 최선의 것이었는가, 정책 결정 과정과 집행 과정은 바람직했는가 등입니다.
식량주권법에는 식량자급률 향상에 가장 기본적인 농지보전 대책이 포함돼야 합니다. 식량자급률 목표치 달성을 위한 농지 총량을 추산해 보전해야 합니다. 마을별 농지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농지 관련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농지 소유와 이용 실태의 전수조사가 필요합니다.
또 농지법 개정과 연계해 농지 감소와 용도 전용을 방지하는 조항이 있어야 합니다. 비농민의 농지투기와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 소유를 금지해야 합니다. 식량주권법은 노동력 확보를 위한 청년 창업농 육성 대책과 외국인 농업노동력 확보와 관리, 필수 농자재 지원 등의 정책 수단과 결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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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9월 28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열린 "쌀값보장, 윤석열 퇴진, 경남농민대회". |
| ⓒ 전농 부경연맹 |
우선 공공비축미 매입에 드는 정부의 실제 지출 예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부가 식량안보를 위해 매년 공공비축미를 40만~45만 톤 매입하는 데 당장 필요한 예산은 약 1조 2000억 원입니다. 이 예산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국민에게 안정적 식량 공급을 위한 정부 의무이고,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이 공공비축미는 1~2년 보관했다가 판매하게 됩니다. 그러면 판매 수입이 생길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1조 2000억 원 매입비용에서 판매 수입을 뺀 차액이 정부가 실제로 부담하는 지출 예산의 총액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장격리 쌀 20만 톤을 가정해 실제 정부 지출 예산을 추산해 보겠습니다. 80kg당 20만 원에 매입하면 약 5000억 원이 필요합니다. 시장격리 쌀 20만 톤을 보관한 후 20만 원에 판매한다면 보관 관리비가 실제 지출 예산입니다. 만일 80kg당 18만 원에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판매수입은 4500억 원이고 실제 지출 예산은 불과 500억 원과 보관 관리비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양곡관리에 재정 부담이 크게 나타나는 원인은 정부가 매입해 비축한 쌀과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의무 수입하고 있는 수입쌀(40만 8700톤)을 헐값에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매입 비축 쌀을 80kg당 20여만 원에 매입해서 8만 원에 판매해 12만여 원의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수입쌀은 80kg당 12만여 원에 구입해 4만 8000원에 팔아 7만 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적자 총액이 1조 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정부가 관리하는 쌀을 헐값으로 판매해 양곡 재정의 적자를 초래할 뿐 아니라, 또 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비축미의 구곡화로 미질이 떨어지고 물가 부담으로 싸게 판매한다고 변명합니다. 그런데 쌀 저장시설이 발달해 쌀을 1~2년 정도 보관해도 미질 차이가 크지 않다고 현장 경험자들은 말합니다. 양곡관리 지출 예산에 대한 왜곡과 호도를 멈춰야 할 것입니다. 매입 비축 쌀과 의무 수입쌀, 시장격리 쌀을 공매 입찰 등 공식적인 판매 방식을 통해 판매가격을 합리화해 양곡관리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해야 합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에 반대하는 논리의 근거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식량주권법을 제대로 제정해서 이행하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호씨는 단국대 교수(경실련 전 상임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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