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외면할 수 없어 갔던 전남도청...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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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5월 첫 발포지를 알리는 5.18사적지 표지석 옆 조형물. 당시 공수부대는 학생은 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살상을 자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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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의 폭력은 이튿날 더욱 잔악했다. 시민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맞섰다. 11공수여단이 금남로에 추가 투입됐다. 장갑차 2대, 군용트럭 15대에 나눠 타고 왔다. 공중에선 헬기 2대가 시위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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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5월 19일 공수부대의 첫 발포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오거리 사이, 통일회관 앞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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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5월 첫 발포지를 알리는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고등학교와 계림오거리 사이, 통일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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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부고 3학년 김영찬이 총탄을 맞았다. 김영찬은 공중보건의 정은택과 시민 도움을 받아 인근 병원에서 응급처치하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공수부대는 이 사건을 숨겼다. 보안부대는 사실 확인하고도, 시위대가 총을 쐈다고 거짓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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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역 전경. 고속열차가 광주송정역에 정차하면서 광주역은 사람들 발길이 뜸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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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무등경기장 앞에 택시 40여 대가 모였다. 운전자들은 '계엄군을 밀어버리자'며 광주역 광장을 거쳐 도청으로 향했다. 금남로에 닿은 차량 시위대가 공수부대의 저지선을 공격했다. 공수부대는 가스탄을 쏘아대며 달려들었다. 금남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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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사적지 표지석의 둥근 원 사이로 본 광주역 광장 앞 풍경. 80년 5월 당시 피비린내가 진동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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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기로 덮은 손수레에 실려 금남로로 옮겨진 허봉의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진은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있는 전시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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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광주역 일대에서 기관총과 M16이 불을 뿜었다.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였다. 김재화, 허봉, 이북일 등 민간인 7명(6명 총상)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수십 명 나왔다. 김재화는 총탄이 왼쪽 가슴에서 오른쪽으로 관통했다. 이발사 허봉은 공수부대의 구타와 대검에 찔려 사망했다. 공수부대가 급히 물러가면서 미처 치우지 못한 시신 가운데 1구가 그였다.
허봉의 시신은 다른 희생자와 함께 태극기로 덮은 손수레에 실려 금남로로 옮겨졌다. 계엄사는 간첩의 소행이라고 둘러댔다. 희생자를 두 눈으로 확인한 시민들 분노는 극에 달했다. 광주역 인근에서 오토바이상회를 운영하던 이북일은 종업원을 찾아 나갔다가 총을 맞았다.
광주역은 80년 당시 '신역'으로 불렸다. 대인동, 지금의 동부소방서 자리에 있던 '구역'과 대비된 이름이다. 신역은 광주의 관문으로, 오가는 사람과 차량 통행이 많았다. 계엄사 입장에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광주역은 계엄군과 군수물자 이동로였다. 공수부대가 광주역을 필사적으로 방어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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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역 앞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역 광장은 5월 20일 밤, 맨주먹의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 현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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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자리에 설치돼 있는 대인지하도. 당시 공수부대는 이곳 지하도로 피신한 시민을 끝까지 쫓아가 총검을 휘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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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공수부대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터미널 일대에서 펼쳐졌다. 총검을 든 공수부대는 시위한 시민을 찾아 터미널 대합실과 지하도까지 쫓아갔다. 아비규환이었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간 시민들 입을 통해 광주 참상이 전남 곳곳으로 전해졌다. 시위가 인근 시·군으로 확산됐다. 시외버스는 20일 오전부터 끊기기 시작했다. 22일엔 모든 시외버스가 멈췄다.
22일, 숭일고 1학년 양창근이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양창근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정대의 실제 인물로 보인다. 주인공 동호(실제 인물 문재학)가 찾아다니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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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자리에 있는 대인지하도. 지하도 입구에 5.18 당시 상황이 전시물로 꾸며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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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시외버스공용터미널 부지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대인지하도 입구 광주은행 화단에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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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자리한 북동성당. 80년 5월 당시 함평고구마 투쟁 승리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북동성당은 광주의 첫 천주교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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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매일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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