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민주주의와 시민형 AI, 기후위기 대응의 새로운 길

김용만 2025. 6. 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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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민주주의, 기술,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접근

[김용만 기자]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인간은 본래 협업의 동물로,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수 없다. 집단을 만들고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민주주의는 그 해결 수단으로, 인류의 지혜가 응축된 매력적인 발명이었다. 사회의 규모가 작았을 때는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선출된 대표자가 '대의(代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어떤 모습이든, 사회 내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기능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도 기술이면서 수단이다. 최근 '거대언어모델(LLM)'이 점점 똑똑해지고 '인공일반지능(AGI)'이 거론되면서 마치 인공지능이 자기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은 연관된 데이터를 패턴으로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시스템일 뿐, 인간의 패턴 인식과 유사한 착각을 일으킬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공지능은 학습하라고 프로그래밍된 컴퓨팅 알고리즘에 불과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결국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전례 없는 도전과 기후민주주의의 필요성

기후 이상 변화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이다. 기후는 본디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장기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는 수만 년, 길게는 수십만 년에 걸쳐 기후 변화에 적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기후변화에는 예외가 있다. 바로 '인류의 현존'이다.

인간의 전방위적이고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개입은 지구의 긴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한때 자연을 향한 인류의 승리였던 치적은 자손들의 지속가능한 생존조차 불투명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기후위기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해결 방식도 달라야 한다. 대체로 매끄럽게 작동하던 대의민주주의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기후민주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민주주의는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심에 두는 개념이다.

이는 집단지성에 주목하고, 정부와 전문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책 결정을 지양한다.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갖는 역동성을 반영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진일보한 민주주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파리 기후시민의회는 기후민주주의 실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시민의회는 프랑스 전역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150명의 시민이 참여하며, 성별, 연령, 직업, 지역 등 다양한 배경을 대표하도록 구성되었다. 이 시민들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이상 감축하는 방안을 도출하는 과제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자문단의 도움도 받았다. 그 결과로 149개의 정책이 제안되었지만, 대부분의 정책은 정부에 의해 채택되지 않았다. 기후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으나, 긍정적인 평가와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다.

기후민주주의의 한계와 AI의 역할

기후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하는 평가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부와 의회를 포함한 기존 엘리트 집단의 폐쇄성이다. 두 번째는 공론의 깊이와 지속성 부족이다. 자문단의 지원이 있었으나, 일반 시민들이 기후위기와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숙의를 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가기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정치적 조율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기후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그렇다면 2019년 당시 파리 기후시민의회가 활동할 때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인공지능은 기후문제의 복잡성과 정보 과잉 속에서 시민 참여의 질을 높이고, 의사결정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데이터, 시나리오, 기술, 사회적·경제적 영향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고 시각화하여 시민들이 이를 쉽게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정책 제안이 미칠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시뮬레이션하여 시민들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모든 과정은 디지털 환경에서 접근이 용이하고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민주주의의 중요한 보조 도구가 될 수 있다.

기후민주주의에 적합한 AI 설계

하지만 인공지능은 편파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해 작동하므로, 데이터가 성별, 인종, 계급, 지역 등에 대한 불균형이나 왜곡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편향을 그대로 학습하게 된다. 특히 인공지능이 블랙박스처럼 작동하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편향이 감추어질 위험도 있다.

인공지능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AI를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시민형 AI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념이다. 시민형 AI는 시민이 직접 참여한 설계, 평가, 피드백 구조를 갖추며, 판단 근거, 데이터 출처, 적용 로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데이터 주권'이다. 시민들이 데이터를 만들고 통제하는 것이 시민형 AI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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