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년 살고도 더 있겠다는 도시 출신 선배, 이중섭이 떠올랐다
2025년 4월 24일부터 7일간 제주 트레킹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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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7일째,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 바다를 보았다. 일행들은 휴식일에 개인적으로 서귀포 바닷가를 접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은 걸매 생태공원과 칠십리 공원에서 멍 때리며 늘어지게 쉬었을 뿐이다. 별 이유는 없고 단지 여행객의 티를 내지 않고 서귀포 주민처럼 행동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특이한 게 있었다면 칠십리 공원에서 멀리 있는 천지연 폭포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와 일행은 올레길 6코스를 잠깐 걷기 위해 숙소에서 각자 짐을 챙기고 나와 한가롭게 걷기 시작했다. 회복 운동 성격의 하이킹이어서 두어 시간 걷고 오전에 마무리할 참이었다. 연이은 4번의 트레킹으로 인해 몸은 다소 무거웠지만 한편에선 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코스는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여 정방폭포를 지난 후 해안가 올레길로 이어진다.
손바닥 단칸방에 4명이... 서귀포에서 10개월 보낸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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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이 거주하던 곁방 |
| ⓒ 안호용 |
지난한 생활이 이어지던 당시 정부로부터 소개령이 발효되자 어디로 갈지 망설이던 그는 마침 제주에 살던 조카 이영진의 주선으로 다음 해 1월 가족을 데리고 제주도로 떠났다. 유랑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제주라고 해서 그를 반겨주지는 않았다. 더구나 4.3 사건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원산에서 온 그는 요주의 인물로 취급받았다.
그런 그의 상황을 안타깝게 보던 어느 주민의 조언으로 그는 다시 제주시를 떠나 서귀포로 발길을 옮겼다. 서귀포는 좀 더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귀포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의 공간을 찾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이었다.
한 겨울 며칠 동안 풍찬노숙을 하며 겨우 서귀포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비루하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소소한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인심 좋은 서귀리 솔동산 반장 내외는 자신이 살던 집 곁방을 반 거지 행색의 이중섭 가족에게 내주었다. 한 평 반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간혹 조카가 군용 통조림 같은 음식을 가지고 찾아오기도 하고, 전쟁통에 전사한 동네 젊은이의 흑백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고구마와 보리 얻어 허기진 배를 해결했단다. 네 식구를 건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궁박한 생활이었지만, 틈틈이 그림도 그리면서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주변의 지식인들로부터 북한에서 감투를 썼다는 소문이 퍼졌고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았다. 중산간에서는 여전히 반란군과 토벌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소문은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탓인지 모르지만 어느 날 어릴 때부터 유독 소에 집착했던 이중섭이 방목하고 있던 소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런 중섭을 발견한 소 주인이 그를 소도독으로 몰아 드잡이를 하는 슬픈 사건도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 유랑인이었다.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은 그해 말 종지부를 찍었다. 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을 접한 그는 식솔을 데리고 육지로 향했다. 이후 그의 인생이 어떻게 나락으로 빠져들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의 고단했던 삶을 아는 지인들은 이중섭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곳은 서귀포에서의 10개월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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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레길에서 본 섶섬 |
| ⓒ 안호용 |
그들을 육지로 보낸 나는 일행 중 K와 함께 하루 더 있기로 하고 숙소를 옮긴 뒤 오후 늦게 위미로 갔다. 위미에 사는 선배가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것이다. 그는 지난 네 번의 트레킹에 빠짐없이 함께 하며 노익장을 과시했었다. 또한 트레킹 때 우리 같은 뜨내기들은 감히 싸가지고 오지 못할 음식도 가지고 와서 식단을 화려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매일 메뉴가 바뀌었는데 그중에는 오징어 숙회와 쑥떡도 있었다.
선배 내외가 처음 제주에 온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우연찮게 나와 비슷한 시기였다. 작년 제주시에 숙소를 마련하고 100일 동안 살 당시 그 선배와 3번 정도 함께 오름 트레킹을 하기도 했었다. 작년 5월 내가 육지로 돌아갈 즈음에 그는 일 년 더 살기로 작정을 하고 지금의 집을 구했다. 처음 3개월 정도 살아보고 마음에 맞으면 더 있겠노라고 말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예 서울 본가에 가서 이삿짐을 자가용에 싣고 제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퇴직한 지 10년이 넘은 시점에 무언가 인생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른다. 거의 평생을 대도시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리고 거의 일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집은 바닷가 근처 마을을 관통하는 올레길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낮은 울담 안에 잔디가 깔린 널찍한 마당이 있고, 두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복층 건물과 조그만 창고와 캠핑카가 기역자로 놓여 있었다.
집 주변에 귤 과수와 야자나무 농원이 있어 제주도 특유의 분위기도 만들어주었다. 처음엔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는 집이었는데, '노가다'를 하면서 다듬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단다. 우리가 제주 하면 흔히 상상하는 시야가 넓은 풍경과 화려한 정원이 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퇴직자의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멋진 공간이었다. 특히 외지지 않아 거주 환경도 안정감이 들었다.
그는 제주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예 주소도 그곳으로 옮겨 제주 도민이 되었고 그에 따른 여러 혜택도 받았다. 아내는 서귀포시에서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많은 사람들과 사귀며 일상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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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는 제주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자료사진) |
| ⓒ insungpandora on Unsplash |
해가 뉘엿거릴 즈음에 나는 K와 함께 그의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선배의 사는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나름 한정된 공간에서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부럽기도 했다. 이제는 비워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언제 마음이 변해 다시 육지로 올지 모르지만 선택은 선배 몫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시간일 것이다.
버스는 서귀포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제주에서 사는 나를 상상하고는 했었다. 제주는 물가가 비싸고 배타적이라는 등의 부정적인 편견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제주는 단순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살아볼 만한 곳이다. 지나온 나의 삶을 기억의 한편에 봉합시켜 놓고, 제주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상상은 아주 매혹적이다. 제주에는 관념을 벗어던지고 실제로 과감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배도 그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한때는 수탈의 땅이었고, 유배의 땅이었고, 대학살의 땅이었고 그리고 이중섭이 피안의 안식처를 갈망하며 찾기도 한 격랑의 제주이다. 그 아픈 역사를 간직하는 제주에 이제는 나 같은 연금생활자들이 한가롭게 제2의 삶의 터전을 삼고자 기웃거린다. 구천에 떠도는 영혼들을 위로한다면 미약하지만 제주라는 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고 뜻깊은 여정이 될지 모른다.
정치적 오해를 무릅쓰고, 선배는 자신을 찾아오는 지인들을 픽업하면서 항상 4.3 평화기념관에 데리고 가려고 했다. 제주를 여행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이중섭이 식솔을 부둥켜안고 잤던 곁방과 선배의 제2의 삶이 겹쳐지는 것은 사실 억지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에게서 굳이 공통분모를 찾고자 나는 애를 써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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