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영국 사회를 흔든 펜의 마술사
영국에서 산 세월이 어느덧 35년이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시간 동안, 한국과 영국 사이에서 느낀 감정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아이들은 영국에서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살아도, 한국이 그리운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거리의 소음까지도 그립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을 때는, 또다시 영국이 그리워졌다. 영국의 조용한 분위기, 잿빛 하늘, 느긋한 일상이 그리웠다. 어쩌면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삶이 고되고 외로울 때는 평화로운 천국을 꿈꾸지만, 막상 천국에 도착하면 이 바쁘고 시끄러운 삶이 다시 그리워지는 아이러니. 그런 감정을 곱씹으며, 오늘은 지금도 영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6월 9일은 작가 찰스 디킨스(1812.2.7.-1870.6.9.)가 5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날이다.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들의 묘역(Poets' Corner)'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 받는 사람들을 동정했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
1990년, 처음으로 영국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디킨스 소설에서 본 안개 자욱한 런던을 떠올렸다. 실제로도 안개는 자주 꼈지만, 그 속에서 마주한 영국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고, 때로는 풍자만화 같았다.
디킨스 없는 영국은 김치 없는 한국 밥상과 같다. 그를 모르고는 영국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30여 년 삶 속에서 절실히 느꼈다.
영국인들은 디킨스를 "티 없이 영국적인 작가"라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는 티 타임보다 탄식이 더 많다.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19세기 영국 사회를 해부한 해학의 의사이자, 가난한 골목에서 유머로 생존한 관찰자였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들, <크리스마스 캐럴>의 구두쇠 스크루지, <어려운 시절(Hard Times)>의 풍자적인 인물들. 디킨스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비극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천재적인 이야기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재발명'한 남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미지는 디킨스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1843)이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그는 어릴 적 '크리스마스다운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빚으로 감옥에 갔고, 열두 살 소년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했다. 그 고통의 기억이 오히려 '진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게 한 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도 매년 12월이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고 연극을 했다. 큰아이는 스크루지 역할을 맡아 "Bah! Humbug!"("말도 안 돼!")를 외치며 집에서도 구두쇠 흉내를 내곤 했다.
디킨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재미있는 소설 속에 사회문제를 감쪽같이 녹여냈다는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이후 빈민아동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니콜라스 니클비>는 사립학교 개혁에, <어려운 시절>은 노동자 권리 강화에 영향을 주었다. <어두운 집>은 사법제도 개혁의 계기를 마련했다.
디킨스는 소설을 무기로 삼아 사회를 바꾸는 데 성공한 '펜을 든 사회운동가'였다.
디킨스는 영국식 위선을 폭로할 때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보다 경쾌했고, 조지 오웰보다 끈질겼다. 분노 대신 풍자, 눈물 대신 재치로 독자를 움직였다.
영국에서 살아보니,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이 사람들 일상에 배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억수같이 비가 와도 "참 좋은 날씨죠?"라고 말하며 웃는 이들이니까. 그것이 바로 디킨스식 정신이다.
19세기판 넷플릭스 작가
디킨스는 요즘으로 치면 '웹소설 연재의 황제'였다. <픽위크 클럽?이 신문에 연재될 때는, 회차가 나오는 날마다 신문사 앞에 독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는 독자의 반응에 따라 스토리를 조정했고, 독자와의 소통 능력은 오늘날 작가들보다도 앞서 있었다.
<리틀 도릿>의 결말이 실린 신문이 발행되던 날, 런던 전역이 술렁였다고 하니 지금의 '오징어 게임 시즌3' 공개를 기다리는 분위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디킨스는 지금도 영어 속에 살아 있다. "Bah! Humbug!"는 가짜나 위선을 비꼴 때, "What the Dickens"는 "대체 이게 뭐야?"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쓰인다. "스크루지"는 구두쇠를 뜻하는 일반 명사가 되었고, <올리버 트위스트>의 '범블'에서 유래한 'bumbling'은 어수룩한 공무원을 묘사하는 형용사다.
런던 곳곳도 '디킨스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코벤트 가든, <크리스마스 캐럴>의 시티,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스트엔드까지. '디킨스 워킹 투어'는 영국의 역사와 문학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산책이다.
디킨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BBC는 매년 디킨스의 작품을 드라마로 만든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했고, 최근에는 디킨스 캐릭터들이 모두 한 동네에 사는 <디킨시안>이라는 드라마도 방영됐다.
디킨스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고전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있고, 사람들이 여전히 웃고, 울고, 분노하게 만든다.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디킨스가 지금의 영국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모든 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가난은 있다. 다만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구걸할 뿐이다."
"과거엔 공장 굴뚝이 문제였고, 지금은 정당 광고가 그렇다."
"스크루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엔 투자 은행에 있다."
디킨스는 단지 '옛날 작가'가 아니다. 그는 영국인의 유머 감각, 사회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정체성에 깊이 스며든 존재다. 한국에서 김소월이나 윤동주가 그렇듯, 디킨스는 영국의 정신을 만든 인물이다.
브렉시트와 경제위기로 혼란스러운 요즘, 디킨스의 유산은 더욱 절실하게 살아난다. "Something will turn up(뭔가 나타날 거야)"라는 그의 문장은 여전히 영국인들이 현실을 견디는 방식이다.
나는 디킨스를 읽으며 차를 마신다. 아이들이 떠나고 고요해진 거실에서, 디킨스와 함께 웃고, 쓴웃음을 짓는다. <어려운 시절>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우리는 그것을 유머로, 문장으로, 위트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디킨스는 죽지 않았다. 런던의 지하철, 맨체스터의 노동자 거리, 웨스트민스터의 정치 뉴스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를 읽고 인용하고, 그의 캐릭터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게 바로, 진짜 고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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