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보 농성장, 그 밤에 찾아오는 또 하나의 존재 너구리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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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성장을 찾아온 너구리의 모습 |
| ⓒ 이경호 |
사람 곁에 살아온 생명
일반적으로 너구리는 농촌에서 '도둑'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옥수수밭을 망가뜨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 익숙해서다.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 한반도 전역에 살아온 토착 야생동물이다. 잡식성이며, 물가와 숲 가장자리를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 도시 확장, 도로 개설, 농지 정비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인간과의 충돌이 잦아졌을 뿐이다. 너구리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몸을 숨기고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나선다. 농성장에 나타나는 이 너구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낯익은 기운이 있다. 경계하지만, 더 가까이 머물고 싶어하는 생명. 싸우고 있는 인간들의 공간을 조용히 살피는 존재. 녹색 천막 농성장을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야생의 친구.
농성 405일, 너구리는 그곳에 있었다
세종보 농성장은 2024년 4월부터 시작되어 어느덧 405일째에 이르렀다. 금강의 흐름을 가로막은 세종보의 재가동을 중단하고, 철거를 요구하며 환경 활동가들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농성을 시작할 무렵, 우리는 야생동물들의 자리를 침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곳은 콘크리트 대신 흙이 깔린 자리, 도시의 소음 대신 바람과 벌레 소리가 머무는 공간이자. 그리고 매일 밤 야생의 기척이 찾아오는 이곳은, 결코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구리는 때로 인간보다 먼저 이 땅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강물이 막히고 생태계가 흔들릴 때, 그들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자리를 옮긴다. 인간의 농성장도 결국은 그런 생명의 흐름을 되찾기 위한 자리다. 그 곁을 스치는 너구리는 말 없이 말한다. 이곳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고. 밤이 깊어갈수록, 너구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하루하루, 우리를 조금씩 더 '안전한 존재'로 받아들이며.
철거되어야 할 세종보, 지켜야 할 생명들
세종보는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금강의 3개 보 중 가장 작고, 가장 빨리 착공되었으며, 가장 먼저 철거되어야 할 보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부 해체 결정이 났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철거는 중단되었고 '유지' 방침으로 선회되었다. 강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물속 생태계는 썩어간다. 물고기가 줄고, 철새가 떠났다. 그리고 밤이면, 배고픈 너구리가 농성장을 찾는다. 사람과 함께 이 강의 운명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존재. 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작은 발걸음, 큰 물음
새벽 2시, 다시 풀숲이 흔들린다. 농성장을 가만히 스쳐간 너구리는 금강변 갈대숲 너머로 사라진다. 남은 건 희미한 발자국 하나, 그리고 고요함. 그 작은 발걸음은 묻는다. 이 강의 흐름을 멈춘 것은 누구이며, 다시 흐르게 할 책임은 누구인가. 너구리도, 인간도, 모두 살아갈 자치를 찾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이재명 정부는 4대강 재자연화를 다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제는 실행해야 할 때다. 매일 밤 농성장을 지켜보는 작은 생명들의 눈을 마주하며, 더는 미룰 수 없다. 더 이상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기 보다, 생명을 위한 결정으로 강을 돌려주어야 한다.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라면, 우리는 더이상 지켜볼 이유가 없다. 내란 종식과 함께 생명 파괴도 멈춰야 한다. 이 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서.
| ▲ 농성장을 찾는 너구리의 모습 농성장 가까이와 먹이를 찾는 너구리 ⓒ 이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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