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여제' 스롱 피아비, 고향 캄보디아에서 '금빛 봉사'

박정연 2025. 6. 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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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 휴식기 맞아 고국 찾아 의료 지원 봉사… 진심 어린 나눔과 재충전

[박정연 기자]

프로당구(PBA) 시즌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선 '당구 여제' 스롱 피아비(36)가 고향 캄보디아에서 큐 대신 봉사 조끼를 입고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지난 6월 5일부터 8일까지 수도 프놈펜 외곽에서 진행된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의료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것이다. 피아비는 의료진의 통역과 환자 안내, 고령자 보조까지 도맡으며 봉사 내내 진료소를 바삐 오갔다. 고온다습한 날씨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환자들과 눈을 맞추며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진료를 마친 교민 어르신들과 현지 팬들의 사진 요청에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응하며 진료소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향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많은 분들이 제게 보내주신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김완호)가 주관한 캄보디아 의료봉사에 롯데장학재단(장혜선)과 유명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함게 했다.
ⓒ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진료 첫날, 아버지와의 눈물의 상봉

진료 첫날 아침, 진료소에는 뜻밖의 손님이 나타났다. 바로 스롱 피아비의 아버지였다. 고향인 깜퐁참주에서 새벽길을 나선 그는 딸이 봉사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프놈펜을 찾았다. 환자들 사이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피아비는 잠시 멈춰 서더니, 이내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빠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았던 감정이 터졌다"고 피아비는 말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당구 여제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었다. 고향의 딸, 가족의 품 안에 있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금메달보다 값진 나눔"

스롱 피아비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그는 2023년 캄보디아가 사상 처음 개최한 제32회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조국의 당구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결승전이 열린 날, 이온몰 프놈펜 경기장에는 수백 명의 시민 팬들이 몰려들었고, 결승 경기 장면은 캄보디아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당시 기자 역시 그 결승전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채 지켜봤다. 숨막히는 결승전 피아비가 마지막 큐를 성공시키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피아비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메달을 조국에 바쳤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또 한 번 조국에 조용한 감동을 선물했다. 이번엔 큐 대신 진료표와 통역 메모를 손에 쥔 채였다.
 의료봉사차 캄보디아를 방문한 캄보디아 당구여제 스롱 피아비 선수가 대한노인회 캄보디아지회 윤신웅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정연
피아비는 2019년 프로당구(PBA) 투어에 데뷔해 단숨에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 잡았다. 2021-22 시즌부터는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며, 특히 2022-23 시즌에는 5차례 8강 이상 진출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올해 2025년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몇 차례 대회에서 일찍 탈락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훈련하며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팬들은 그의 빠른 회복과 화려한 복귀를 응원하고 있다.

하루 600여 명 진료… 의료 사각지대 채웠다

이번 의료봉사는 대한정형외과의사회(회장 김완호)가 주관하고 롯데장학재단이 후원했다. 수도 프놈펜 외곽의 한 소아병원을 임시 진료소로 활용했으며, 전문의·간호사·물리치료사 등 20여 명이 팀을 이뤄 하루 평균 600~700명의 주민들을 진료했다. 진료는 단순 정형외과 외상 치료를 넘어,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검진과 약 처방까지 포함됐다.

아이엠정형외과 최성욱 원장은 "작년엔 시아누크빌에서 봉사했는데, 올해는 프놈펜으로 장소를 옮겼다"며 "더 많은 이들에게 의료 혜택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 마지막 날에는 김완호 회장이 의료진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봉사는 남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다. 여러분의 땀이 이곳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교민 어르신들과 다문화가정에도 진료 혜택

이번 봉사는 현지 주민뿐 아니라 캄보디아에 거주 중인 독거 교민 및 다문화가정 어르신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한노인회 캄보디아지회 윤신웅 회장은 "이곳엔 의료보험이 없어 간단한 건강검진조차 어려운 교민분들이 많다"며 "이번 봉사는 그분들에게 귀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진료소 한쪽에서는 또 다른 봉사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롯데장학재단 장혜선 이사장이었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인 그는 봉사 내내 의료진과 함께 현장을 정리하고 자원봉사자들과 일정을 소화했다. 롯데장학재단은 지난해 캄보디아의 프놈펜왕립대학교(RUPP), 캄보디아국립기술대학교(NTUC), 캄보디아국립폴리텍대학교(NPIC), 왕립법학경제대학교(RULE) 등 4개 대학에 재학 중인 저소득층 성적 우수 학생들에게 '신격호 글로벌 장학금'을 지급한 바 있다. 또 이번 의료봉사 기간에는 스롱 피아비가 운영하는 '피아비한캄사랑봉사회'에 후원금 1000만 원을 지원했다.

봉사라는 이름 아래, 국적과 직업, 언어가 다른 이들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큐를 내려놓고 조용히 손을 내민 스롱 피아비가 있었다. 그녀가 프놈펜을 흐르는 메콩강처럼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이 땅을 적셔가는 땀과 눈물은, 20대 초반 낯선 한국 땅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매 순간 도전과 극복의 과정을 견뎌온 그녀의 인내와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한 경험과 마음가짐은 단순한 개인의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봉사로 결실을 맺으며 고향 캄보디아와 대한민국을 잇는 소중한 다리가 되고 있었다.
 캄보디아 다문화가정주부이기도 한 유명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이번 캄보디아 의료봉사팀에 합류 통역과 안내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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