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폰 삭제' 국정원 개입 정황 포착…경찰, 조태용·박종준 부른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보안 휴대전화(비화폰) 정보가 계엄 선포 사흘 뒤 원격으로 삭제된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수본은 지난해 12월 6일 윤 전 대통령 등의 비화폰 정보가 원격으로 삭제된 것과 관련해 지난 4일 김성훈 전 대통령 경호처 차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김 전 차장 측은 경찰에 “비화폰 정보 삭제에 관여한 바 없고 전혀 무관하다”라며 “당시 책임자는 박종준 전 경호처 처장”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12월 6일 비화폰 정보가 삭제된 날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차장이 연락을 나눈 내역이 없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다만 경찰은 해당 비화폰 정보가 삭제되기 전 조태용 국정원장과 박종준 전 경호처 처장이 통화를 나눈 사실을 파악했다. 두 사람이 통화를 나눈 뒤 홍 전 차장 등의 비화폰 정보가 원격으로 삭제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경호처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한 비화폰 서버 등을 분석하면서 이런 정황을 포착했다.

지난해 12월 6일은 홍 전 차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윤 전 대통령이 전화해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말했다”며 계엄 당일 12월 3일 오후 10시53분 수신, 1분 24초 통화 등 윤 전 대통령과의 비화폰(pss 1000) 통화내역 4건이 담긴 화면을 공개한 날이다.
경찰은 이같은 홍 전 차장의 폭로 이후 국정원 측이 경호처에 비화폰 ‘보안 조치(원격 로그아웃)’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비화폰은 원격 로그아웃되면 통신 내역 등 정보가 마치 초기화가 된 것처럼 지워져 이른바 ‘깡통폰’이 된다. 경찰은 이런 과정이 증거인멸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삭제 경위와 관련한 지시 관계를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박 전 처장과 조 원장 등을 소환 조사하겠단 방침이다. 박 전 처장과 조 원장 측에게 해당 의혹을 전화·문자로 질의했으나 모두 연락을 받지 않았다. 박 전 처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1차 집행을 저지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윤 전 대통령이 비화폰 정보 삭제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7일 김 전 차장에게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군사령관의 비화폰 정보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는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김 전 차장에게 “수사받는 사람들의 비화폰에 대해서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의혹이다. 다만 경호처 실무진이 김 전 차장의 삭제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보안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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