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포, 호러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부터 <판의 미로>까지, 기이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영화를 만들어 오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지난 2022년 넷플릭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은 델 토로 감독 본인이 선정·제작한 이야기를 다른 감독의 1시간 이하 단편을 통해 전하는 앤솔로지 형식이다. 상상력과 기술의 발전으로 웬만한 '공포'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게 된 요즈음, 본작이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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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 스틸컷 |
| ⓒ 넷플릭스 |
결국 호러는 본질적으로 우화가 될 수밖에 없다.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노인의 나신을 공포적 장치로 이용하는 경향으로 드러나고, 비서구권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부두술과 마법으로 귀신을 불러내는 흑인·동양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혐오에 맞서는 시대정신을 지닌 현대 사회에서 호러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은 호러 장르의 우화적 특성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이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시리즈의 첫 단편인 < 36번 창고 >는 이민자에게 거부감을 가지는 주인공이 돈벌이를 위해 유품 창고를 뒤지다가 괴물과 함께 그곳에 갇힌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괴물의 정체에 집중하는 대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창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두들기는 순간을 조명한다. 잠긴 문밖에 있던 이주민 노동자는 주인공의 불친절을 기억했기에 도움 주기를 거부했고, 주인공은 자신의 불친절이 초래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이 외에도 여성과 사회적 미적 기준 사이의 사투를 다룬 <겉모습>, 트라우마를 심령 현상이라는 소재로 나타낸 <새들의 비행> 등, 본작은 대놓고 노골적인 우화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전의 공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 속 이야기들은 사회적 차별과 정신건강 등 우리가 이해하지만 경시하는 요소를 공포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야말로 21세기에 걸맞은 호러 컬렉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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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서린 하드윅 감독이 연출한 <마녀의 집>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 스틸컷 |
| ⓒ 넷플릭스 |
무덤 도굴꾼이 그곳을 장악한 쥐 떼로부터 쫓기는 내용의 <무덤가의 쥐>는 1997년 영화 <큐브>로 유명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특이한 괴수 디자인이나 점프 스캐어(jump scare: 갑자기 공포의 대상을 들이밀어 관객을 놀래는 연출) 없이도 그 특유의 분위기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서스펜스와 블랙 코미디에 능한 나탈리 감독의 특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죽은 쌍둥이 동생의 영혼을 구해 오기 위해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주인공을 다룬 <마녀의 집>은 우리에게 <트와일라잇> 등으로 잘 알려진 캐서린 하드윅 감독의 영향력이 돋보인다. 특유의 동화적인 감각과 수려한 편집은 마치 한 편의 잘 만든 가족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처럼,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 방> 속 각각의 이야기는 다양한 감독들에 의해 그 나름의 특성을 띤다. 이는 각 에피소드의 분위기 편차가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예르모 델 토로 본인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선택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다소 교훈적인 성향을 띠는 본작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감독들의 손을 거쳐 '다른 맛'을 지닌 작품으로 재탄생하면서, 호러 영화의 기본인 '재미'를 보장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은 모두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는 있지만, 시의성 있고 특색 있는 이야기들로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호러'를 자처한다. 짧고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늦은 밤 텔레비전을 보는 듯 친밀한 감각의 공포를 경험하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호러라는 장르와 다시금 사랑에 빠질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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