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민주화운동으로 불러야” 中 독립 역사학자 장리판 별세

독립 역사학자이자 예리한 정치평론가로 활약한 장리판(章立凡) 선생이 지난 3월 22일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지만 “당국의 압력으로” 부고를 비밀에 부쳤으며, 유골은 지난 7일에야 베이징 화이러우(懷柔)의 주궁산(九公山) 능에 안장됐다고 홍콩 명보가 8일 보도했다.

장리판 선생은 지난 2019년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계기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1989년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이 실패하면서 중국은 경제는 발전해도 정치는 멈춰선 신세가 됐다”며 “당국이 ‘동란’, ‘폭동’에서 ‘정치풍파’를 거쳐 ‘폭란’으로 규정했지만 ‘민주화 운동’이 가장 적절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앞서 2017년 19차 당 대회를 전후로 가진 인터뷰에서는 상하이방·태자당·공청단파 등의 쇠퇴를 정확히 예측했다.

고인의 부친은 1936년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은 중국 정부가 체포한 ‘항일 7군자’ 장나이치(章乃器, 1897~1977)다. 경제전문가였던 장나이치는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정무원(현 국무원) 정무위원, 전국정치협상회의 재경조 조장, 초대 양식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1957년 반우파 투쟁 당시 마오쩌둥이 “우파의 우두머리”로 지목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고인도 문혁 당시 연좌제로 투옥되는 수난을 당했다. 1980년에는 덩샤오핑으로부터 부친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복원받는 데 성공했다.
고인은 문혁이 끝난 뒤 대입이 복원되면서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에 들어가 역사 연구에 전념했다. 북양군벌사, 중국당파사, 중국의 현대화 문제 등을 연구했다.『중화민국사』 편찬에 참여했으며 『장나이치와 중공영수들』, 『7군자전』, 『기억: 지난 일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往事未付紅塵)』 등 신중국 초기 민주당파를 다룬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외신 인터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양심으로 활약했다. “법률을 연구해 함정을 피해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보도된 뉴스만 평론하고 폭로하지 않으며, 글로벌 언론에 발언해 개인 브랜드를 갖춘다”는 당국의 검열을 우회하는 세 가지 준칙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베이징 중축선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자 이를 완고하게 비판한 한시가 고인의 유작이 됐다. 그는 “옛터 허물고 고치니 영정문은 사라지고(舊址拆修無永定·구지탁수무영정) 새로 건물 다시 세운들 어찌 하늘이 편안할까(新樓復建豈天安·신루부건기천안)”라며 지난 1970년 천안문을 비밀리에 철거한 뒤 재건한 사실을 밝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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