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재명이와 같은 이름의 대통령에게 기대가 커요"
[변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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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습기살균제 참사 13주기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전국네트워크,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유족 등이 2024년 8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계속된다, 13주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 이정민 |
"엄살이라 핀잔줬던 고통, 알고 보니 가습기 살균제 때문"
김태윤씨의 편지는 남편과의 소중했던 45년 결혼 생활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다. "우리 결혼한 지도 벌써 45년 됐네요. 빠르네요. 5월 21일 결혼한 날이죠"라며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짚었다. 딸 선영씨의 태명이 이름으로 정해진 사연, 아들 재명이의 탄생에 기뻐하던 남편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깊은 그리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내 편지는 가슴 아픈 고백으로 이어진다.
대방동 살면서 아프다고 할 때 엄살 부린다고 제대로 당신 말 들어주지도 않고 나도 힘들어 투정부리고 했던 것 미안해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온몸이 아픈 걸... 겉이 멀쩡한데 맨날 엄살 부린다고 핀잔준 것 정말 미안해요.
김씨는 남편이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릴 때 엄살로 치부하며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뒤늦게 건강보험공단 기록을 떼어보고 나서야 남편이 홀로 감당했던 고통의 크기를 알았다며 "지금 가슴이 찢어져 와요. 홍은동으로 이사 왔어도 혼자 병마와 힘든 걸 제가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애통해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뒤늦게 알게 된 유가족의 죄책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부분이 모두 안고 있는 이중의 고통이다.
남편과 이별한 지 벌써 14년, 김씨의 삶은 깊은 상실감에 잠겨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채 머리가 아프고 밤이면 잠을 자고 싶지도 않고 맨날 가슴을 부여안고 남몰래 울기도 했어요.
자녀들의 결혼식에서 남편의 빈자리를 절감했고, 홀로 남은 외로움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털어놨다. 외로움을 떨치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운전을 하지 못해 그마저도 할 수 없다는 후회와 함께 남편이 "운전을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 왜 더 강하게 우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남편에게 너무 믿고 의지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부분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한 가정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후회 속에서 김씨는 "나도 당찬 데가 없이 (남편을)믿고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후회되네요.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용기 내어 무엇이든지 하려고 상담도 받고 정신 차려보려 합니다"라는 다짐으로 아픔속에서 그저 주저 앉아 있기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불합리한 보상안, 외면당한 목소리
김씨는 남편의 사망 이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진실 규명과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다.
김태윤씨는 2013년 11월 사망 피해자 유족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옥시레킷벤키저 본사를 항의 방문해 기업의 사과와 책임 있는 자세를 강력히 촉구하였고, 2023년 8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3단계 피해자 및 유가족과 함께(모임)' 대표로 옥시 전 대표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치상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고발에 앞서 "남편은 2011년 2월 28일 폐 질환으로 사망했고, 몇 개월 뒤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다. 가족 모두 옥시 제품을 사용했지만 3단계 판정을 받아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가해 기업과 정부를 규탄했다.
2022년 3월, 11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안이 발표되자 김씨는 유가족 단체 대표로 "11년 우여곡절 끝에 조정안이 나왔지만, 이미 가정은 풍비박산"이라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사망자 배상금이 고도 장애 피해자의 지원금을 밑도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배상금의 현실적인 증액과 조정위 및 가해 기업의 각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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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10월 서울 광화문에서 있었던 4대종단 기도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이 힘들어 무대 앞에 의자를 준비해 두었다. |
| ⓒ 변상철 |
김씨는 마침 아들 이름이 '재명'이라 이번 이재명 대통령 당선이 새삼 반가웠다며 이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한다. 김씨는 현재 환경부가 진행하는 '가습기살균제 사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협의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꼭 당신 원수 가습기 살균제 문제 끝까지 싸워서 억울한 죽음 헛되지 않도록 할게요"라는 그녀의 마지막 다짐처럼,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고 모든 피해자가 합당한 보상과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많은 이들이 염원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국가의 책임과 진실 규명을 위한 결단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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