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하다'를 대체할 새로운 말, 추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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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중 기자]
눈동자에 심연 같은 우주가 담긴 '인터스텔라 미(美)'
표정만 봐도 삶의 서사가 느껴지는 '문학 동네 미'
데뷔 때보다 지금이 더 젊어진 듯한 '벤자민 버튼 미'
영국 귀족처럼 기품 있는 '공작 부인 미'
실제로 보면 책을 수십 권 읽은 것 같은 '북클럽 미'
연예인들의 실물을 본 유튜버들이 남긴 외모 표현들인데, 이런 창의적인 '미(美)' 시리즈가 참 인상적이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도 비슷한 단어들을 붙여보려 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남편을 떠올리니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떡두꺼비 미'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그런데 막상 내가 평가받는 입장이 된다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진 않다. 역시 괜한 시도는 피하는 게 낫겠다.
그 유튜버가 아니더라도 말과 표현으로 웃음을 주는 이들이 많다. 오히려 영상보다 댓글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조선시대에 사람들이 책을 빌려보며 여백에 낙서를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드립(재치 있는 말)'의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의 특징 덕분인지 짧은 말로도 감정을 명확히 전달한다. 다른 언어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 어머니는 70이 넘으셨지만, 가끔 처음 듣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수년 전에는 꽃의 탐스러움을 묘사하는 생소한 의태어를 쓰시길래 수첩에 적어두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그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자주 쓰지 않다 보니 잊힌 모양이다. 그 시절엔 지금보다 더 풍성한 언어를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 모임의 60대 이상 회원들도, 요즘 말들이 예전보다 단순해졌다는 데 공감했다.
말은 사라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표현도 계속 생겨난다. '안습'(안구에 습기 차다), 'OTL'(엎드려 절망한 모습), 'JMT'(정말 맛있다) 같은 표현들은 벌써 20년 가까이 된 단어들이다. 시대가 바뀌면 언어도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학생이던 90년대에는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에 적어도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요즘은 '100억 자산가 vs 무일푼 차은우' 같은 말처럼 외모에 대한 솔직한 찬양이 넘쳐난다. 예전에는 줄임말도 언어 파괴라며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튜브나 웹드라마에서도 욕설이나 과한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된 신조어도 등장했다. '혜자스럽다'는 배우 김혜자 씨처럼 인심 좋고 가성비가 뛰어난 걸 뜻하고, '창렬하다'는 김창렬 씨 이름을 빌려 가성비가 형편없는 경우를 표현하는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손민수하다'는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뜻한다. 이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등장한 인물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요즘은 '손민수하다'를 대체할 새로운 말이 생겼다고 한다. 둘째 아이에게 물어봤다.
"OO야, '추구미'라는 단어 알아? 너희도 자주 써?"
"응, 자주 써.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이나 스타일을 말해. OO의 '추구미'는 '테토녀'야."
'추구미'는 자기 이상형이나 되고 싶은 이미지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테토녀'는 또 뭘까 싶어 찾아보니, 생물학적인 성별과는 별개로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여성을 의미한단다. 활기차고 능동적이며, 독립적이고 정신적으로 강한 이미지다. '에겐녀'(에스트로겐적 여성), '테토남', '에겐남'처럼 다양한 변형도 있다.
이해하려 애쓰지만, 요즘 신조어를 따라가다 보면 뱁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그래도 '추구미'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궁금해 더 들여다봤다. 처음엔 '이상향'과 같은 말인가 했지만, 좀 더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예를 들면 퍼스널 컬러, 옷 스타일, 헤어스타일 등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완전히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모 평가, 일명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성차별이나 성희롱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외모가 자존감이나 능력의 척도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왜 이렇게 외모에 집착하게 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는, 우리가 상대의 내면을 보지 못하기에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추구미'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다는 점에서 더 긍정적인 의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외적인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는 삶의 가치나 방향성까지 포함한 더 깊은 의미로 발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계획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나도 청소년 시절, 무의식중에 나만의 '추구미'를 만들었었다. 한 번은 심리 프로그램에 참여해,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나는 뜻밖에도 갈색 수도사의 복장을 한 내 모습을 그렸다.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곰곰이 떠올려보니,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속 인물 '나르치스'가 내 '추구미'였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되짚고, 내 생각과 선택들을 이해하며 비로소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닮고 싶은지를 아는 일, 곧 나의 '추구미'를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유행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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