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아닌 아들로... 어머니 향한 효심의 결정체, 화성행궁
[문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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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봉수당,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 능(융릉)을 참배하기 위해 머물던 임시 궁궐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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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1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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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
| ⓒ 문운주 |
처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수원 화성행궁. 조선 정조의 꿈과 실학자 정약용의 숨결이 깃든 이곳에서, 나는 시간의 결을 따라 조용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정조와 다산의 개혁 정신, 그리고 그들이 함께 그려낸 이상 도시의 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특히, 내 마음을 울렸던 건 바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위해 준비한 회갑연이었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의 60세 생신을 맞아 이곳 봉수당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단순한 효심의 표현을 넘어, 왕이 백성과 함께 어머니를 축하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진한 울림을 준다.
그는 손수 축하 시를 짓고, 음식과 의례, 행렬 하나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직접 챙겼다고 한다.
그 회갑연은 단 하루의 잔치가 아니었다. 정조는 한강에 배다리를 놓고, 6천여 명의 수행원과 1,400 필의 말을 이끌고 100리 길을 직접 이동해 수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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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600년 느티나무/ 속은 텅비어 있는데 생생하니 잎은 생생하다. 당시의 회갑연도 지켜봤을까.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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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행궁 300년 된 향나무 |
| ⓒ 문운주 |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이다. 1789년 완공 당시 '장남헌'이라 불렸으며, 1795년 혜경궁 홍 씨 회갑연을 계기로 '봉수당'으로 개칭되었다. 정면 7칸 규모로, 일반 동헌 구조에 더해 왕이 지나는 어로와 월대를 갖춘 점이 특징이다.
230년 전 이곳을 가득 채웠을 정조의 마음이 떠올랐다. 단순한 생일잔치가 아니었다. 회갑연은 단 하루가 아닌 8일간의 대규모 행차와 잔치로 펼쳐졌다. 정조는 창덕궁에서 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한양을 떠나 66km에 달하는 화성 능행차를 이끌었다.
백성과 신하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의 회갑을 온 나라가 함께 축하한 것이다. 화성행궁에 도착한 정조는, 이 봉수당에서 진찬례(進饌禮)를 올렸다. 군주의 권위가 아니라 아들의 지극한 효심이었다. '만년의 수를 빈다'는 뜻으로 건물 이름도 '봉수당'이라 고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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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화성행궁 전경 미로한정에서 내려다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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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품국 김홍도의미로한정 주변의 가을국화 가득한 모습.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안내판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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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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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티나무 고목 6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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