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재회, 영국 케닐워스 성에서 인생을 회고하다

김성수 2025. 6. 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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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에서 되새긴 가족과 시간, 그리고 사랑의 기억

영국에서 산 세월이 35년이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아이들은 영국에서 초중고대를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산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11년 만에 다시 찾은 케닐워스 성에 대한 감회를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11년 전인 2014년 5월 가족 그리고 영국친구 가족들과 케닐레스 성
ⓒ 김성수
"이곳, 예전에도 이렇게 조용했었나?"

올봄, 아내와 나는 영국 중부에 있는 케닐워스 성(Kenilworth Castle)을 다시 찾았다. 잔잔한 봄바람이 부는 잔디밭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성의 붉은 벽돌은 오래된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 둘 꺼내 보여주는 듯했다. 11년 전, 2014년 5월, 우리는 중학생이던 두 자녀와 함께, 오랜 영국 친구 가족과 이곳을 찾았었다. 그날의 케닐워스는 지금과는 달랐다. 해맑게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친구들과 나누었던 활기찬 대화, 그리고 햇살 아래서 즐겼던 간단한 피크닉까지, 모든 것이 생기 넘치고 소란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다시 찾은 올 봄, 우리는 둘 뿐이다. 아이들은 성장해 각자의 길을 가고, 친구들은 건강 문제로 여행이 어려워졌다. 남아 있는 것은 오래된 사진 몇 장과 그 안에 담긴 웃음들, 그리고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목소리 뿐이다. 아내와 나는 텅 빈 잔디밭에 앉아, 시간이라는 강이 어디서부터 흘러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짚었다.

중세의 유령보다 극적인, 케닐워스 성의 시간들
 케닐워스 성
ⓒ 김성수
케닐워스 성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이는 12세기 초, 약 1120년경에 세워져 9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낸,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무대다. 중세에는 왕의 요새로 기능했고, 특히 존 왕(John of England) 시절에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성을 낭만적으로 만든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엘리자베스 1세와 그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 레스터 백작이다.

1575년, 더들리는 여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곳에서 무려 19일간의 호화로운 축제를 열었다. 불꽃놀이, 가면무도회, 사냥, 연극과 연회가 연이어 벌어졌고, 그 비용은 지금 가치로 수백만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일생일대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끝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 사랑은 '역사상 가장 비싼 짝사랑'으로 남았다.

이후 케닐워스 성은 영국내전을 거치며 파괴되었고, 성벽은 허물어졌으며, 사랑의 흔적은 전쟁의 그늘로 덮였다. 케닐워스 성의 붉은 석조 잔해는 그 모든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묵묵히 품고 있다.

"추억도 숙성된다", 시간 속에서 달라진 시선
 올 봄 다시 찾은 케닐워스 성
ⓒ 김성수
11년 전, 우리는 성의 웅장함에 놀라면서도 도시락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칠까 조바심을 내며 사진 한 장조차 허겁지겁 찍었고, 성의 섬세함보다는 아이들의 안전과 시간 관리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달랐다.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그만큼 여유를 갖게 되었다.
성문 위에 남은 총안(銃眼, loophole: 성벽이나 요새, 방어진지 등에 설치된 작은 구멍 또는 틈으로, 방어자들이 적을 향해 총이나 활을 쏘기 위해 만든 구멍), 계단의 닳아버린 돌끝, 감옥으로 쓰였던 어두운 방들까지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동안, 넌 어떻게 살아왔니?"라는 질문에, 나는 문득 지난 11년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부모로서, 부부로서, 개인으로서 겪었던 성장과 변화의 순간들이 그 질문에 조용히 응답하는 듯했다.
 성, 먼거리에서
ⓒ 김성수
전망대에 선 아내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당신, 엘리자베스 여왕이 된 기분이야?"(사실 아내의 중간 이름이 엘리자베스다)

아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여왕보단 궁녀 쪽이 어울리는 것 같아."
"그럼 나는 호위무사?"
"아니, 마차 끄는 말이야."

그 대답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농담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만 남은 시간
 성 안에 있는 정원
ⓒ 김성수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 행복하게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아직 손주는 없지만, 언젠가는 아이들 대신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을 작은 존재들을 상상해본다. 케닐워스 성을 배경으로 찍은 오래된 사진을 보며,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다음엔 손주들과 오면 좋겠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땐 당신이 진짜 여왕, 난 마차 끄는 말."
"말은 안 되고, 호위무사 정도면 봐 줄게."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추억을 쌓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지만, 기억은 머문다
 올 봄 찾은 케닐워스 성
ⓒ 김성수
케닐워스 성은 여전히 그대로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오래된 성벽은 침묵 속에서 우리를 반기고, 지나간 발자국과 웃음소리를 어렴풋이 간직한 채 세월을 품고 있다. 다만 변한 것은 그 안을 걷는 우리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다녔던 그 자리에, 이제는 조용한 회상이 감돈다. 하지만 그것은 쓸쓸함이 아닌, 숙성된 따뜻함이다.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시간의 향이 은은히 스며든.

앞으로 또 11년이 흐르면, (그때도 살아 있다면)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성을 다시 찾게 될까. 손주의 손을 잡고 활짝 웃을 수도 있고, 더 주름진 얼굴로 오늘을 다시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우리는 여전히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봄날은 간다. 아니 인생의 가을은 깊어 간다.

* 덧붙임
케닐워스 성을 방문한다면, 잔디밭에서의 피크닉을 꼭 추천한다. 중세유적과 현대의 돗자리 문화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격식과 일상, 역사와 현재, 과거의 추억과 오늘의 미소가 한자리에 어우러질 때, 그 순간 이야말로 가장 진한 감동을 남기기 마련이다.
 성벽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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