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재계 5위 탈환…‘화장발’ 덕이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6.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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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재평가에 ‘싸늘한 시선’
롯데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공정자산 기준 재계 5위를 탈환했다. 다만, 일종의 회계 착시 효과라 할 수 있는 토지자산재평가로 순위가 올랐다는 점에서 시장 시선은 싸늘하다. (롯데백화점 제공)
최근 롯데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공정자산 기준 재계 5위를 탈환했다. 보통 대기업 공시집단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전년 말 기준 공정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지정해 통지한다. 롯데는 토지자산재평가로 자산이 증가해 철강업 업황 악화에 시달리는 포스코를 제치고 5위를 되찾았다. 롯데는 지난해 13년 만에 재계 순위 5위에서 6위로 밀렸다가 1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다만, 일종의 회계 착시 효과라 할 수 있는 토지자산재평가로 순위가 올랐다는 점에서 시장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부채비율 개선으로 잠시 시간을 벌었지만, 본업 현금흐름 개선 없이는 위기 복원력 회복이 힘들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공정거래위원회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6위를 기록한 롯데(동일인 신동빈)는 올해 한 단계 상승한 5위를 기록했다. 롯데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줄곧 재계 5위를 지켜오다 지난해 포스코 자산이 급증해 5위 자리를 내줬다.

순위 회복 배경은 자산재평가다. 자산재평가는 기업이 보유한 자산의 장부가액을 현재 공정가치로 조정하는 회계처리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원가가 아닌 공정가치 기준으로 자산을 재평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지난해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휘말린 롯데는 토지자산재평가 등을 실시했다. 덕분에 자산이 종전 129조8290억원에서 올해 143조3160억원으로 10.4% 확대됐다. 그룹 계열사 롯데쇼핑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보유 중인 토지 자산 약 7조6000억원에 대한 재평가에 나서 유동성 위기설 불식에 안간힘을 썼다. 롯데쇼핑은 지난 2월 기준 토지 관련 자산만 9조4665억원 늘었다.

지난해 회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사태(롯데케미칼)까지 겪었던 롯데 입장에선 위기설 조기 진화를 위해서라도 자산재평가를 서둘렀단 분석이다. 오프라인 유통을 주력 사업으로 둔 그룹 특성상 우수한 입지 부동산이 많아 이를 장부상 인식하면 실질 가치가 반영돼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롯데 측 판단이다. 재평가잉여금은 자산재평가 후 증가한 금액 가운데 기존 장부가액을 초과하는 부분을 뜻한다. 직접 배당이나 영업활동 등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재무 구조 개선에 도움을 준다. 회계상 자본 항목에 해당하는 만큼 자본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효과는 이미 가시화했다. 2024년 말 연결 기준 롯데쇼핑 부채비율은 129%로, 2019년 리스 회계 기준 도입 이후 처음 180% 이하를 기록했다. 호텔롯데도 연결 부채비율이 2023년 말 166.7%에서 2024년 말 120%로 큰 폭 개선됐다.

하지만 시장과 외부 이해관계자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부채비율 관리로 표면적으론 그룹 재무 건전성이 개선된 듯 보이지만, 자산재평가를 일종의 재무제표 ‘화장발’로 보는 인식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토지는 감가상각 대상이 아니면서 수십 년 전 취득가로 장부에 기재된 경우가 많아 재평가 시 수치상 효과가 극대화되는 대표 자산으로 꼽힌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자산을 콕 집어 재평가했단 의미다. 예를 들면 이렇다. 10년 전 1억원짜리 땅을 사둔 기업이 있다고 치자. 그동안 땅값이 10배로 뛰었지만 장부에는 여전히 1억원짜리 자산으로 잡혀 있다. 이를 재평가해 10억원으로 장부에 기입하면 가만히 앉아서 자산이 9억원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산이 늘어난 만큼 부채비율(부채/자산)은 낮아지고 대외 신인도는 개선된다.

한신평 “현금 유입 없는 개선” 지적

번 돈보다 나갈 돈 더 많아

그럼에도 자산재평가는 현금흐름 개선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화장발’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첫째, 자산재평가는 현금흐름 창출력과 무관한 자본 증가 효과만 낳는다. 자산 가치가 올랐다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이나 수익 창출 능력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자산과 자본이 증가해 마치 재무 구조가 좋아 보이는 듯한 ‘착시 효과’가 빚어진다. 둘째, 자산재평가는 수익성과도 무관하다. 재평가 차익은 포괄손익계산서상 기타포괄이익(Other Comprehensive Income)으로 인식되며 이익잉여금이 아닌 ‘재평가잉여금(자본 항목)’에 포함된다. 재평가 차익은 손익계산서상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자산총액이 커져 총자산수익률(ROA)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같은 핵심 투자 지표는 이전보다 낮아질 수 있다.

재평가에 따르는 숨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원한 유통 업종 애널리스트는 “자산재평가로 인한 재평가이익은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므로 당장 세금은 내지 않지만, 미래 매각 시 과세될 잠재 이익이 발생하므로 이연법인세부채를 인식해야 한다. 이익은 장부상 숫자지만 향후 부담할 세금은 진짜 돈이라는 점에서 본업 경쟁력 개선 없이는 오히려 현금흐름이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신용평가 업계에서도 자산재평가 착시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현금 유입 없이 표면적으로 레버리지 지표만 개선된 것일 뿐”이라며 “그룹 실질 재무 부담은 2022년 큰 폭 확대된 이후 여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자산재평가 결과가 롯데쇼핑과 호텔롯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롯데가 단기간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유의미한 변화를 일구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한신평에 따르면, 롯데그룹 순차입금은 2020년 28조원에서 2024년 말 40조원으로 급증한 가운데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도 4배에서 7.7배로 악화했다. 실질적인 이익 창출력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롯데그룹 비금융 부문 영업이익률은 2022년 1.4%에서 지난해 0.8%로 하락하는 등 수익성 둔화가 뚜렷하다. 특히, 그룹 핵심인 화학 부문 영업적자 확대와 유통·레저 부문 부진이 그룹 전반 수익성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다. 문제는 들어가야 할 돈에 비해 벌어들이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합산 신규 투자 규모는 ▲2022년 4조8000억원 ▲2023년 6조7000억원 ▲2024년 4조8000억원으로, 이 기간 벌어들인 EBITDA(3조6000억~4조6000억원)를 줄곧 웃돌았다.

특히 재계에선 작금의 롯데그룹 상황과 맞물려 주주 충실 의무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입법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재계에선 이 법안이 사실상 현재 대기업집단그룹 체제 해체를 겨냥한 것으로 내다본다. 아직 법안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주주 충실 의무는 주주 간 이해 충돌이 있을 경우 공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취지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룹 차원에서 부실 계열사 신용 보강을 해주거나 대여금을 내주는 식의 의사 결정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부실 계열사를 살리는 것은 대주주에게는 이익이지만, 개별 상장사 주주 입장에선 불필요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한 대기업 대관부서장은 “상법은 경제 분야 헌법으로 민주당 주도 상법 개정은 집단경영 체제에 익숙한 우리 재계 의사 결정 방식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롯데뿐 아니라 다수 대기업이 그룹 차원에서 불확실성 헤지를 위한 유동성 확보, 비주력 자산 매각 등을 최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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