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대지진 참사 현장, 사가잉을 가다

강태우 2025. 6. 3. 17: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땅에 희망을 심고 눈물을 닦다

[강태우 기자]

▲ 미얀마 대지진으로 무너진 철교 만달레이주와 사가잉주를 잇는 철교입니다.
ⓒ 강태우
캄캄한 절망 위로 희망의 빛을, 사가잉의 눈물을 닦다

지난 5월 18일 오후 4시, 155석 규모의 미얀마 항공기가 인천공항의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비행기에는 단순한 승객과 화물을 넘어, 머나먼 땅 미얀마를 향한 간절한 연대와 희망의 씨앗이 함께 실려 있었다. 군부 쿠데타와 연이은 대지진으로 깊은 신음 속에 빠진 미얀마,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진앙 사가잉(Sagaing) 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두 달 가까이 임시 거처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재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6시간의 비행 끝, 미얀마 양곤 국제공항에 내려 서자 후덥지근한 열대의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한국과는 2시간 30분의 시차. 시간이 멈춘 듯,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낯선 정적만이 감돌았다.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그날의 마지막 도착 편이었던지, 입국 수속은 불과 10분 만에 끝났다. 텅 빈 공항에는 여행객을 맞는 호객꾼 하나 없이 깊은 적막감마저 흘렀다. 그 낯선 땅에서 신길현 선교사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공항까지 나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기도 전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신씨와 머리를 맞대고 지진 이재민 지원 방안을 위한 긴급 논의에 들어갔다. 양곤에서 최종 목적지인 사가잉 지역까지는 차로 8~9시간,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의 도로를 달려, 상처 입은 땅 사가잉으로

5월 20일 새벽 4시, 우리는 대지진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만달레이와 사가잉으로 향했다. 6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동안, 지진으로 파손된 도로는 곳곳이 파이고 뒤틀려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에서 몇 시간이나 흔들리는 것은 몸만이 아니었다. 이 땅이 겪은 고통이, 그 속을 지나며 더욱 피부로 와 닿았다. 차는 위아래로 격렬하게 요동쳤고, 창밖으로는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들,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고 공동체의 중심이었을 공간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다. 대지진으로 만달레이주와 사가잉주를 잇는 철교 일부와 지역 건물들도 심하게 파손되었다. 결국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야 사가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지금도 군부와 시민군 간의 내전이 진행 중인 위험 지역이다. 그러나 총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그 땅에 남은 사람들의 깊은 고통과 절망의 신음이었다.
▲ 사가잉 지진 피해 현황 브리핑 현지인 모과과씨가 사가잉 지진 피해 현황을 설명합니다
ⓒ 강태우
만달레이 지역 유지로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모 과과(Moe Kyaw Kyaw)씨의 안내로,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공동체 시설 건물이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137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예삐침례교회' 예배당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붕괴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다우제 목사는 무너진 건물 잔해 앞에서 흐느끼며 말했다.

"137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 공동체의 중심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이 깊은 절망 속에서, 멀리 한국에서 이 위험한 곳까지 찾아와 주신 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위로와 희망입니다."

그의 눈물 어린 감사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적시며, 때로는 함께하는 발걸음 자체가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사쿠머 임시 거처, 절망의 한가운데 피어난 위로

이어 방문한 '사쿠머 이재민 임시 거처'. 그곳에는 129 가구가 60여 개의 텐트 안에 위태롭게 모여 살고 있었다. 텐트 하나에 두세 가정이 부대 끼며 살아가는 비좁은 환경,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은 참담한 삶. 지진 발생 50일이 넘은 지금도 이들은 고통의 한복판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난민촌의 처참한 광경은 가슴을 짓눌렀지만, 절망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그들의 눈동자에서 꺼지지 않는 삶의 의지와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며,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 사강잉 사쿠머 이재민 캠프 사가잉 사쿠머 이재민 캠프에서 이재민에게 구호물품을 전달합니다
ⓒ 강태우
밤을 삼킨 눈물, 아침을 여는 기적

만달레이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5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저녁 8시 마감 전 마트로 다시 달려가 구호 물품을 구입했다. 10개 교회, 243 가정과 임시 거처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식용유와 라면, 생필품을 트럭에 가득 실었다. 그 양이 어찌나 많았던지, 트럭까지 추가로 빌려야 했다. 불과 50여 일 전, 진도 7.7의 대지진이 할퀴고 간 처참한 현장, 만달레이에서 맞이한 밤은 깊은 숙연함으로 가득했다. 밤새 창문을 할퀴는 빗소리는 마치 상처 입은 땅의 절규처럼 들려왔고, 새벽녘 얕은 잠결 속에서도 다음 날 구호 물품 전달에 차질이 생길까 하는 염려로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다행히 새벽 5시 45분, 물품을 가득 실은 차가 사가잉으로 출발하려는 바로 그 순간, 밤새도록 쉼 없이 퍼붓던 폭우가 마치 기적처럼 멈췄다.

작은 손길, 큰 위로… 사랑은 언어를 넘어

이른 새벽 출발한 덕분에 교통 체증 없이 약속한 시간인 아침 7시, 사가잉의 첫 번째 구호품 전달 장소인 '앵글리칸 교회'에 무사히 도착했다. 곧이어 인근 3개 마을 대표들이 속속 도착했고, 전날 미리 파악한 주민들의 절박한 필요에 맞춰 정성껏 준비한 구호 물품과 지원금을 전달하며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뒤이어 137년 역사의 '백주년기념교회'를 다시 찾아 무너진 터 위로 구호품과 지원금을 전달했을 때, 주민들의 눈가에는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사쿠머 임시 거처'에 들러,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길게 줄을 선 이재민 한 분 한 분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그들의 지친 얼굴에 잠시나마 번지는 희미한 미소와 질서 정연하게 구호품을 받아 가는 모습 속에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강한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작은 나눔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더 큰 위로와 감동을 받는 뭉클한 순간이었다.
▲ '예삐침례교회'(The Centennial Church) 구호물품과 위로금 전달 백주년기념교회에 구호품과 구호성금을 전달합니다.
ⓒ 강태우
마지막으로 인근 다섯 교회 대표와 주민들이 함께 모이기로 한 카친족 교회 공동체를 방문했다. 다루농 담임목사는 "예수사랑교회가 멀리 한국에서 이 위험한 곳까지 찾아와 귀한 구호 물품과 지원금을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국경을 넘어선 따뜻한 마음에 하나님의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라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서로의 눈빛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렇게 지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만달레이와 사가잉에서의 모든 지원 활동은 여러 도움의 손길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다시 양곤으로 9시간을 달려 돌아가야 하는 먼 여정이었지만, 예정했던 지원은 물론, 계획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와 감격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 미얀마 지진 피해 다섯 교회와 주민들에게 구호 물품과 구호성금 전달 미얀마 지진으로 무너진 교회들과 주민들에게 구호 물품과 성금을 전달합니다.
ⓒ 강태우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때

이번 미얀마에서의 모든 여정을 되짚어볼수록, 모든 과정이 기적처럼 느껴졌고, 많은 분들의 도움과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음을 절감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구호활동을 펼쳐온 이들조차, 지진의 진앙지이자 정부군과 시민군 간의 내전으로 외부인의 접근이 극도로 위험한 사가잉 지역까지 직접 찾아와 이재민들을 돕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시민이 강제로 체포되어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하며, 이곳의 불안한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해야 했다. 현지 선교사로부터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청년들이 군대로 강제 징집되는 것을 피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북쪽 지역 내전을 피해 수많은 난민이 양곤과 같은 도시로 피신하여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접했다.

이번 미얀마 대지진 진앙인 만달레이와 사가잉에서의 안전한 구호 활동은 현지 선교사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길현 선교사(GMS 소속)는 이번 여정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지난 3월 28일 발생한 진도 7.7 지진의 진앙지인 사가잉 지역을 직접 돌아보며, 지진 피해 지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야 할지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지난 4월, 수색 구조 및 구호 활동으로 다녀왔던 만달레이, 네피도 등 지역에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돕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며, 이 땅의 주민들을 위해 마땅히 함께 해야 할 일임을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미얀마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2021년 군부 쿠데타, 2022년부터 지속되는 내전, 2024년 홍수, 그리고 2025년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명심하고, 인내를 가지고 이 나라와 주민들을 돕는 일에 함께 나아가야 함을 믿습니다."

예수사랑교회를 대표해 고난 당하는 미얀마 땅, 따뜻한 손길이 절실한 이 위험한 곳에서 미얀마 주민들의 아픔과 함께하고 작은 도움이나마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불과 며칠 전에도 학교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수십 명의 무고한 어린 생명이 희생되었던 미얀마 사가잉. 그 처절한 아픔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자 했던 이번 여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헤아려 본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도록 후원하며 함께해주신 모든 도움의 손길에 깊이 감사드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군부 쿠데타로 인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대지진의 상흔으로 큰 고통 가운데 있는 미얀마 주민들과 미얀마 땅을 위해, 한국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간절히 호소드린다.

2025년 5월 22일 목요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강태우 목사 (예수사랑교회 담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민일보(내용 다름)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