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물, 사려니숲길의 '사려니'에 담긴 뜻이 이거였구나
2025년 4월 24일부터 7일간 제주 트레킹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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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숲길이 가장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은 남조로와 516도로의 사이 중산간 지역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교래리, 수망리, 한남리, 위미리, 하례리 등의 일부가 짜깁기처럼 접해있고, 동서남북으로 남조로와 516도로와 서성로와 그리고 비자림로가 둘러싸고 있다. 사각형 모양의 이 구역 면적은 75평방 킬로미터이고 헥타르로 환산하면 7,500헥타르다.
이 공간 안에는 수백 종의 식물 수종과 수십 종의 동물을 품고 있는 사려니 숲과 한남시험림을 비롯해 크고 작은 20여 개의 오름이 분포하고 있다. 적어도 이 지역 면적의 60% 이상은 '종의 다양성과 생태환경적인 건전성'의 유지를 위해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면적 중에는 안타깝게도 쓰레기 매립지와 대규모 채석장과 2개의 골프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 공간에 바로 사려니 숲길이 있다. '사려니'라는 뜻은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그 명칭은 원래 남쪽 서성로 쪽에 솟아 있는 사려니오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지역에 숲이 발전하게 된 것은 1920년대 일본에 의해 서귀포에서 제주로 넘어가는 병참 임도가 만들어질 당시 부근에 국유림이 조성되면서부터이다. 해발 300미터~700미터 사이의 이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식물의 보고여서 국유림으로 지정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사려니오름 부근에 일본군 군 시설이 세워지고, 4.3 때는 토벌대 임시 주둔지가 구축되어 지금도 터가 남아 있다.
사려니 숲은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관리해 오다 산림청에서 관리권을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2년 유네스코가 제주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하였고, 2009년 5월 본격적으로 일반에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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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사려니 숲길 입구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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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사려니 숲길 |
| ⓒ 안호용 |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삼나무들의 크기와 조림지 규모가 커지자 원시림으로서의 종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가 나타났고, 너무 커서 귤 과수에 필요한 일조량을 방해하기도 하고, 봄이면 꽃가루를 뿌려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등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이런 인과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제주도는 20여 년 전부터 더 이상의 삼나무를 조림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조림한 것이다.
강성론자들은 외래종인 삼나무를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벌목하여 고유의 재래종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환경론자들은 삼나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솎아내는 선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길게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삼나무도 조릿대처럼 이제는 많은 제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몇 년 전, 다음 블록에 있는 비자림로를 4차선으로 확장 공사할 시점 당시, 길 옆의 울창한 삼나무 숲을 제거하는 것을 두고 오랫동안 제주도와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갈등을 겪었다. 3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기나긴 대치 끝에 제주도는 환경부와 조율하여 도로 폭을 좁히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삼나무 벌목 수를 당초 계획한 708목 중에서 298목을 살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려니숲의 진한 숲내음... 80년 이상은 되었을 것 같은 삼나무들
비자림로에서 사려니 숲길 들머리로 들어서자 하늘로 치솟은 아름드리 삼나무 무리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이곳 삼나무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림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80년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비 온 후나 습기 많은 날에는 진한 녹색 이끼가 삼나무들을 감싸고 올라가 대부분 숲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울창한 숲과 더불어 그 컬러풀한 풍경은 기이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이성적 침묵을 유도하기도 했다. 마치 고갱이 브리타니에서 그린 원색의 풍경화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사려니 숲에 첫 발을 들어서면 이 시각적 풍경과 함께 엄습하는 것은 바로 냄새이다. 누군가는 피톤치드 향이라고 하고, 누구는 더덕 냄새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수많은 식물이 토해내는 생명의 냄새라고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냥 진한 숲내음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 냄새는 숲의 깊이와 다양성을 대변한다. 이런 내음은 육지의 어느 곳에서도 맡을 수 없는 제주만의 향기이다. 수많은 세월과 함께 살고 죽어서 만들어낸 대자연의 향기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각과 후각에 압도된 나와 도반은 정신을 가다듬고 숲 속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단풍나무, 졸참나무, 굴거리나무, 서어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때죽나무 등 수백 종의 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넓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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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시험림길의 삼나무 숲길 |
| ⓒ 안호용 |
나와 도반들은 지체 없이 시험림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수풀이 우거져 있다. 한라산둘레길의 6구간이기도 한 이 길은 한번 들어서면 다른 탈출로가 없어서 돌아가거나 끝까지 가야 한다. 자가용을 가져왔다면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출입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처럼 대중교통에 익숙한 트레커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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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시험림 채종원 길 |
| ⓒ 안호용 |
이 지역은 제주에서 가장 많은 삼나무가 분포되어 있다. 빼곡한 삼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고, 그 삼나무 조림지를 지나더라도 다시 상록 활엽수인 붉가시나무와 구실잣나무와 굴거리나무 등이 빼곡하게 밀집하여 있고, 낙엽활엽수인 사어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등도 나머지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런 두터운 숲은 이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한남시험림은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소속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 지역 산림 면적은 '목재성산림 47.6%, 자연보존림 24.5%, 채종원 13.3%, 수원함양림 9.8%'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휴양림으로도 4.8%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제산림관리협회(FSC)로부터 국제산림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장장 9km에 이르는 시험림길을 지나면 마지막 구간인 이승악길이 곧바로 이어진다. 나와 도반들은 초입부 삼나무 숲을 지나 이승악 측면부 오르막길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예상 시간보다 지체되었다. 이제부터는 편한 길은 사라지고 험한 길과 부대껴야 한다. '암흑의 심연' 같은 깊은 숲으로 인해 방향감각은 사라지고, 길은 협소한 공간에서 불규칙하게 굴곡지고, 현무암 바위가 계속 발에 차이고, 여러 개의 험악한 계곡도 발목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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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이승악에 있는 화산탄과 붉가시나무 |
| ⓒ 안호용 |
그 화산탄 지대를 지나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파놓은 갱도 진지 터와 곧이어 숫가마터가 나타나 트레커의 발길을 세운다. 특히 갱도 진지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저항 진지로 구축한 4개의 진지 중에 하나라고 한다. 24미터 깊이에, 폭 2.6미터, 높이가 2.2미터라고 한다. 70~80년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당시 토픽에 수십 년 동안 숲 속에서 홀로 생존한 일본군 패잔병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피골이 상접한 사진과 함께 종종 실리고는 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에 체포되지 않고 숨어 살다 발견된 일본군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있었다고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바로 이 갱도 진지도 일본군이 마지막까지 항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깊은 산속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사람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깊고 험한 지역이라는 방증이다.
이제 이승악 능선 경사면을 벗어나 깊은 계곡을 건넌 후 길게 난 울창한 숲길로 접어들었다. 길이라고 하지만 사실 길은 불투명하다. 풀숲일 경우엔 사람이 좀 다니면 자연히 희미하게나마 오솔길이 만들어지지만 이곳은 검은 돌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길이 만들어질 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국립관리공단에서 한라산 둘레길을 완성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PP로프를 나무에 계속 연결하여 길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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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4월 29일 한라산 둘레길 신례천 |
| ⓒ 안호용 |
며칠 전 비가 좀 많이 왔다면 아마도 이 계곡을 건널 수 없을 게다. 한라산 어느 바위틈에서 시작된 하천은 수많은 지류가 합쳐지면서 대자연의 노여움 같은 굉음을 토해내며 이곳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 거센 물살을 보지 못했지만 들은 얘기에 의하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어떤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기억을 상기시키며 나와 도반들은 지금은 시치미 딱 떼고 숨을 죽이고 있는 그 하천을 조심스럽게 건너기 시작했다.
햇빛을 보고 싶었다는 갈증이 뇌리에 꽂힐 때가 있다. 이 어두운 숲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며, 빛은 언제 나의 망막을 뚫고 들어와 시신경을 자극할 것인지, 서서히 숲이란 공간에 지쳐가는 나를 발견한다. 빚은 영원히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 숲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본군 패잔병처럼 수십 년 동안 이 숲에서 헤매다 숲이 될지도 모른다. 가도 가도 빛은 보이지 않고 나와 도반들은 그렇게 지쳐갔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과정이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목적지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둡고 긴 숲 터널의 종말도 눈앞에 다가왔다. 저 앞에 빛이 보이는 가싶더니 곧이어 서광이 밝아오는 것처럼 눈부신 태양이 나와 도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종착지인 수악 날머리에 당도한 것이다. 좁은 숲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인가. 나와 도반들은 오늘의 노고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에게 칭송을 하였다. 도착 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1시간 초과하였다. 주변 삼마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이날로 제주 트레킹 일정을 끝났다. 다음날은 오전에 잠깐 서귀포 주변 올레길을 걸은 후 일행 중 대부분은 육지로 돌아갈 것이다. 매일 트레킹을 끝낸 후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그날의 트레킹 과정과 서귀포 여행에 대해 흥겹게 뒤풀이를 했었다.
일상을 내려놓고, 서귀포 어느 골목의 식당과 맥주집에서 웃고 떠들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시간들이었다. 아침 9시에 호텔 로비에 모여 이동했던 구터미널 버스정류장과 김밥과 먹을거리를 사던 가게들과 그 좁은 골목길들, 이젠 기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항상 기억 속에 남기 마련이다. 그리고 하루 뒤면 서울 어느 지하철역에서 많은 인파 속에 섞여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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