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 노조도 국적 따라 다르다?

김성수 2025. 6. 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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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두 문화, 두 노조 이야기

영국에서 산 세월이 35년이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욕심쟁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한국과 영국의 노조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한영기
ⓒ 김성수
한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살아오며 오랜 시간 노동조합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드라마처럼 뜨거운 한국노조, 다큐멘터리처럼 차분한 영국노조. 그 차이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문화, 감정, 그리고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같은 목적을 향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는 두 나라 노조의 이야기를 전한다.

파업의 미학: 드라마 대 오페라

한국의 파업은 강한 서사 구조를 지닌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때론 단식과 삭발로 정점을 찍는다. 감정의 폭발이 곧 힘이고, 뉴스에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사극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반면 영국의 파업은 오페라처럼 느리고 장중하다. "안타깝게도 귀하께 이 사실을 알려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We regret to inform you)"로 시작되는 정중한 파업 안내문은 우아하지만, 실제로는 런던 전역이 도보 천국이 되는 대혼란이 벌어진다. 외형은 조용하지만,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감정보다 절제가, 격렬함보다 지속성이 중심이다.

노조 리더의 얼굴: 투사 대 협상가

한국노조의 지도자는 때로 '투쟁의 상징'처럼 보인다. 단식, 삭발, 고공농성 등 고강도의 투쟁을 마다하지 않고, 정부와 자본에 맞서는 카리스마는 종종 대중의 지지를 끌어낸다. "정권 타도"의 구호도 익숙하다.

영국노조 지도자는 조금 다르다. 현장에서 보다는 언론과 회의실에서 활약한다. BBC와의 인터뷰, 노동당 인사와의 티타임, 데이터를 앞세운 협상. 감정보다는 논리, 구호보다는 분석. 마치 '정치인 같은 노조간부'의 전형이다.

일터의 문화: 명령 대 합의

"그냥 해." 한국의 일터에서는 상사의 말이 곧 법과 같다. 수직적 위계는 일상이자 전통이다. 따라서 노조 역시 이 권위에 강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강력한 투쟁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반면 영국은 다르다. 회의가 많고, 또 많다. 결정 하나에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다시 모여 조율한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합의'라는 민주적 가치가 내재돼 있다. 영국노조의 힘은 바로 이 조정능력에서 나온다.

절박함과 여유의 온도 차

한국노조 사무실에는 "해고는 살인이다"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 생존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 반면 영국노조 사무실에는 "고민하지 말고, 조직하세요!"(Don't agonize, organize!) 같은 문구가 보인다. 조금은 가볍고, 어쩌면 유쾌한 느낌마저 든다.

총파업의 계절도 다르다. 한국은 겨울, 영국은 여름. 찬바람을 맞으며 싸우는 한국의 '결기'와 햇살 좋은 날씨를 이용한 영국의 '여유'. 농담처럼 들리지만, 파업의 계절조차 그 나라 문화를 비춘다.

협상 테이블에서: 감정 대 이성

한국의 협상은 감정에서 출발한다. 눈물과 호소, 고통의 공유가 협상의 무기로 작용한다. 때로는 진정성과 절박함이 결과를 이끌어낸다.

영국의 협상은 보고서 발표를 연상케 한다. "이 차트를 보시면…"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고, 감정적 논쟁이 되면 "잠시 휴식을 취할까요?"(Shall we take a break?)라며 한 걸음 물러선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방식이 오히려 설득력을 높인다.

파업 이후의 장면: 정서 대 실용

한국에서는 파업이 끝나도 감정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동료였던 이들이 어색해지고, 사측과의 관계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승리의 환호나 패배의 분노는 오랫동안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은 다르다. 어제 피켓을 들었던 사람이 오늘 회사 식당에서 관리자와 차를 마신다. "악감정은 갖지 마세요."(No hard feelings.) 모든 게 업무였고, 파업도 그저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실용주의적 태도가 일상을 지배한다.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 열광 대 관망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뜨겁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로 강하게 비판하거나. 파업은 늘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보다 무덤덤한 시선이 일반적이다. "그들도 할 말 있겠지", "그건 그들의 일." 찬반보다 관찰, 판단보다 존중이 기본 태도다.

노동은, 결국 인간존엄에 대한 이야기

영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지낸 35년. 그 시간 속에서 깨달은 건, 노조의 방식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는 사실이다. 더 나은 삶, 더 존중 받는 일터. 한국의 뜨거운 심장과 영국의 차가운 머리가 만난다면, 어쩌면 이상적인 노조문화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한국노조는 뜨겁고, 영국노조는 차분하다. 두 나라의 노동조합은 문화, 역사, 정치 구조에 따라 다르게 진화해왔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사람 답게 일하고, 사람 답게 살고 싶다."

이 소망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노조는 때론 피켓을 들고, 때론 서류를 들고 싸운다. 그 방식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노조는 방법일 뿐, 목적은 '인간존엄' 이다. 피켓이든, 협상이든, 우리의 노동이 존중 받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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