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위 두산, 이승엽 감독만의 잘못 아니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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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 |
| ⓒ 연합뉴스 |
두산은 1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지난 해 두산에서 뛰었던 키움의 새 외국인 투수 라울 알칸타라는 친정팀을 상대로 6이닝 98구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준우, 주승우, 원종현(세이브)로 이어지는 불펜진도 뒤를 이어받아 실점없이 리드를 지켜냈다.
두산은 앞서 5월 31일 경기에서도 키움에 0-1로 패한 바 있다. 선발 잭 로그가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음에도 김재환과 임종성만 단 2안타에 그치는 빈공에 발목을 잡혔다.
1일 경기에서도 선발 최승용이 6.1이닝 5피안타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이번에는 타선이 키움(5개)보다 많은 9개의 안타를 치고도 역시 한 점도 뽑지 못했다. 마지막 9회초에는 1사 만루의 결정적인 역전 기회를 잡았음에도 후속타자인 김준상이 삼진, 양의지가 우익수 플라이로 무기력하게 물러나며 승부를 뒤집는 데 실패했다. 두산 타선은 지난 5월 30일 키움과의 주말 3연전 1차전 7회에 7득점을 뽑아낸 이후, 무려 '20이닝 연속 무득점'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키움은 지난 5월 30일 두산과의 주말 3연전 1차전까지 11경기 연속 무승(1무 10패)에 빠져 있었으나, 2, 3차전을 내리 잡으며 연패탈출과 동시에 35일만의 연승까지 내달렸다. 반면 두산은 2할대 승률을 기록중이던 꼴찌 키움(16승 1무 41패, .267)에게까지 뼈아픈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9위(23승 3무 32패)에 머물렀다. 5강권인 KT(30승 3무 26패)와의 승차는 6.5게임까지 벌어졌다.
지휘봉 잡은 뒤 최악의 페이스... 타선도 극심한 침체
지난 2월 말 전지훈련 기간에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일본 미야자키를 찾아 선수단을 격려하면서 "4, 5위 하려고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분발을 촉구한 바 있다. 어느덧 두산과의 3년 계약기간 마지막 시즌을 맞이하게 된 이승엽 감독 역시 구단주의 메시지에 적극 공감하며 "프로라면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타깝게도 2025시즌 현재 두산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승엽 감독 1년차이던 2023년 5월까지 두산의 성적은 4위(23승1무22패), 2년차이던 2024년 5월까지의 성적은 3위(32승 25패 2무)였다. 반면 두산이 올시즌 처음 9위까지 내려앉은 시점은 5월 6일이었고, 어느덧 시즌의 1/3를 넘긴 시점에서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며 오히려 5강권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승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로 가장 최악의 페이스다.
두산이 시즌 전 준비했던 여러 가지 구상들이 초반부터 연이어 무너진게 치명타였다. 토종 에이스 곽빈은 부상으로 페넌트레이스 개막부터 함께하지 못했고, 필승조인 홍건희와 이병헌도 전력에서 이탈하며 투수진의 전력누수가 유독 컸다.
믿었던 메이저리거 외국인 원투펀치도 1선발 콜 어빈(5승 5패 4.28)이 부상과 각종 논란 속에 최근 2군행을 통보받았고, 잭 로그(3승 5패 3.13) 역시 기복이 있다. 최승용, 김유성, 최준호, 홍민규, 최민석 등 5월까지 벌써 여러 투수들이 토종 선발진으로 투입됐지만 3-5선발의 안정감이 상위권 팀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마운드 운용의 계산이 잘 서지 않는다.
타선 역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다. 팀타율(.258, 4위)은 기록상으로는 리그 평균 이상은 되지만, 정작 결정적인 찬스에서 무기력한 경우가 많다. 두산 타선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3할타자는 양의지 한 명뿐이다. 특히 5월 들어 외국인 타자 제이크 케이브(타율 .24) 2홈런 9타점, 김재환(타율 .240) 4홈런 17타점, 정수빈(타율 .239) 2홈런 9타점 등 핵심 타선의 타격감이 동반 하락하며 득점권 타율이 .234에 그쳤다.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론은 결국 감독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최근 두산의 성적이 계속해서 추락하면서 일부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이승엽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승엽 감독은 사실 부임 초기부터 두산 팬들 사이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전설 중 하나로 꼽힌 인물이지만 현역 시절 '삼성맨' 이미지가 강한데다 두산과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다. 여기에 별다른 지도자 경험 없이 선수 시절의 명성만으로 갑자기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낙하산 논란도 팬들의 불신을 자아낸 원인이었다.
두산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는 우려했던 것보다 어느 정도 성적은 냈지만, 이번에는 '부족한 경기운영능력', '지나친 스몰볼과 투마카세(불펜투수 혹사)', '단기전에서의 부진' 등의 약점들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승엽 감독은 홈팬들에게 여러 차례 야유를 듣는 수모를 당하는가 하면, 감독교체를 요구하는 트럭시위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올시즌에는 일찌감치 성적마저 하락하며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승엽의 야구가 나타나줘야 한다"
사실 프로야구 감독들이 팬들에게 만만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KIA의 통합우승을 이끈 이범호 감독이나, 현재 1위팀인 LG의 염경엽 감독 역시 조금만 부진하거나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온갖 비난과 폄하를 받는다. 더구나 두산은 2010년대 후반 한국시리즈에 밥먹듯이 진출하며 '왕조'를 호령했던 팀이기에,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의 눈높이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두산 부진의 모든 원인이 오직 이승엽 감독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두산은 이승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직전인 2022년 9위에 그쳤다. 이 감독은 2023년 5위, 2024년엔 4위를 기록하며 어쨌든 두산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비록 두 시즌 연속 와일드카드 문턱을 넘지 못하며 우승권과 거리는 있었지만, 당시 전문가들도 두산의 전력을 높이 평가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외부적으로 이승엽 감독의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악재도 많았다. 2024년에야 드러난 두산의 전 주장이자 은퇴선수 오재원의 마약 파동은 이 감독이 부임하기 오래 전부터 벌어진 두산의 내부적인 문제였다. 이승엽 감독은 이 사건으로 내부 육성에 필요했던 다수의 유망주 자원을 한 시즌간 아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2010년대 두산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 가운데 김재호는 은퇴했고 허경민은 FA로 이적했다. 이제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양의지-김재환-정수빈 등 일부만이 남았다. 두산이 다른 부자 구단들처럼 FA를 잡는 데 적극적으로 거액을 투자하는 구단도 아닌데다, 매년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해내던 '화수분야구' 시스템도 예전같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지난 2년간 이승엽 감독을 보좌하던 코치진들만 연거푸 문책성으로 물갈이되며 이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이 강해지기 어려운 구조였다. 현대야구에서는 감독이 혼자서 모든 시스템을 좌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대교체와 리빌딩이 1~2년만에 갑자기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프로야구 감독을 지냈던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두산의 경기력을 평가하며 이승엽 감독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이 위원은 "감독이 되면 선수들의 장단점을 다 보게 되는데, 경기를 하면서 단점이 더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꾸 선수들을 믿지 못하고 (감독이 개입하는 )스몰볼로 가게 된다"면서 "그럼 두산만의 야구를 보여줄 수도 없고, 또 선수들이 그걸 해내지 못하면 의기소침하게 되면서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승엽 감독이 팀 전력을 제대로 파악해서 팬들이 이해할 수 있는 팀 컬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은 두산이 가고자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볼 수가 없다. 이승엽 감독이 조금 더 선수들을 믿고 경기를 풀어가면서 이승엽의 야구, 두산의 야구가 나타나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벼랑 끝에 몰린 이승엽 감독과 두산으로서는 '6치올(6월에는 치고 올라간다)'의 반전이 더 절실해졌다. 일단 토종 에이스 곽빈이 오는 3일 KIA 타이거즈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시즌 첫 1군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 유력하다. 여기에 불펜 자원인 홍건희, 이병헌, 야수 이유찬 등도 퓨처스리그에서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선수 가용 폭이 제한되던 이승엽 감독에게 그나마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산은 이번주 KIA-롯데와 잠실 6연전에 돌입한다. 어차피 계약 마지막 해인 이승엽 감독으로서는 남은 시즌 동안 성적도 성적이지만, 후회없이 자신만의 야구철학과 원칙을 소신있게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과연 이 감독은 남은 2025 시즌 동안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인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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