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여전히 우리 삶의 동맥이다

김용만 2025. 6. 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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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왜 다시 강을 말해야 하는가

[김용만 기자]

바다가 없는 나라는 있어도, 강이 없는 나라는 없다. 크고 작을 뿐 강은 어디에나 있었다. 인류는 이 강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물류의 주요 통로는 늘 강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같은 대표적 문명도 거대한 강을 품고 태어났다.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강이 되어 흐르고, 결국 바다로 향한다. 이 흐름은 자연의 순리이자 삶의 본질이었다.

오랫동안 강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통치자의 필수 덕목이었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였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있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야말로 치수의 황금률이다. 농업 중심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저수지와 보, 수로 등을 통해 물길을 돌보되, 과도한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물은 흘러야 제맛이고, 특정 지역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당연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는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농지를 떠나 공장이 있는 도시로 몰려들었고, 국경은 열리고 교역은 활발해졌다. 자국민을 먹이기 위해 식량을 반드시 국내에서 재배할 필요는 없었다. 부족하면 물건을 팔고 그 돈으로 사오면 그만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식량 자급률은 낮아졌고, 농민은 점점 줄어들었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은 더 이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먹거리는 마트에 가면 언제나 진열되어 있고, 지갑만 두둑하면 된다.

한때 우리 생명줄이었던 들판은 이제 생활에서 멀어졌고, 강도 그에 따라 멀어졌다. 요즘 도시 주변 강이 주목받는 이유는 '조망권' 때문이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나 주택은 풍경 덕에 가격이 오르고, 같은 단지 내에서도 강을 볼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시세 차이가 크다.

강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 재산 가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강은 이제 가끔 휴식을 취하러 가는 곳, 계절마다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장소일 뿐이다. 예전처럼 일상에서 강과 함께한 희로애락은 사라졌다. 강에 무슨 일이 생겨도 잠깐 흥분하다가 곧 잊히기 일쑤다. 우리는 강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사업'으로 주요 강들이 파헤쳐졌을 때, 대부분의 국민은 그것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당성 검토와 문제 제기는 일부 활동가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최근 녹조 현상과 같은 후유증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방송에서 그 모습을 보고 분개하긴 하지만, 곧 잊혀진다. 만약 대도시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거나, 지하철, 철도, 도로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경각심을 놓지 않겠지만, 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강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산업구조가 바뀌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두고 볼 일은 아니다.

강은 여전히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우선 강물을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 지하수가 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하수도 결국 강물의 일부분이다. 둘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환의 시간 속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강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전략적 자원으로 보아야 한다. 강의 생태적 기능은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핵전쟁보다 더 파괴적일 것이다. 이 어려운 싸움에서 강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동반자다.

시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강은 본질적으로 강한 공적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의 여러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사유림은 있지만, 사유화된 강은 없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낯설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뉴질랜드 정부는 와이타카레 강을 하나의 법인격으로 인정했다. 인도 우타라칸드 고등법원은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에 인간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했고,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국내 모든 강을 법적 인격으로 간주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강의 공공성과 연결성을 인정한 중요한 사례들이다.

만약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 법인격을 가졌다면, 4대강 사업과 같은 터무니없는 토건 개발 프로젝트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오래전 우리 강들은 현대적 의미의 법인격이 없었더라도 지역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라도 그 권리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었다. 강은 공동체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하나의 강이라도 마을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랐다. 각기 다른 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마을의 자양분이 되었다. 좋든 나쁘든, 강은 언제나 마을의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우주를 탐험하는 현대에도, 치수(治水)는 국가 경영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물 부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물 순환과 자원 활용 정책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한다. 물에 관한 계획은 결국 강에 관한 것이다. 2024년 7월 30일, 환경부는 '기후대응댐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효용성이 거의 없는, 지역 토건업체의 이익만 챙기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후보지 14곳에서 거의 모든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치수 전략을 개발로 착각하는 것은 4대강 사업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2027년 착공 예정이라는데, 삽질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6월 3일 이후,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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