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민들이 광주에 와서 찾은 사람... 전태일과 참 닮았다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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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원 열사의 자취를 찾아온 대구시민들이 전남대 정문에 세워진 사적 제1호 표지석을 살펴보고 있다. 뒤로 보이는 곳이 5.18이 시작된 전남대학교 정문이다. |
| ⓒ 서부원 |
'네거티브'를 남발하는 출마자들로 인해 선거운동이 과열 양상을 띠게 되면, 광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빨갱이'가 되고, 대구 시민들은 '수구 꼴통'으로 낙인찍히는 신세가 된다. 선거 구도가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로 짜이고, 시민들의 정치의식도 수십 년 전으로 퇴보한다.
표를 얻기 위해 혐오와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들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도 한통속이다. 조회 수 장사에 목매단 언론에 '정론 직필'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언론의 존재 이유마저 흐릿해진 상황에서 여론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혐오와 갈라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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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 사회과학대학 건물 내에 마련된 '윤상원 홀'에서 윤상원의 생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건물 밖에는 '윤상원 정원'이 조성되어있다. |
| ⓒ 서부원 |
어느덧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치권에 철저히 종속된 상태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정치인들의 필요에 따라 적극 활용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두 도시 시장님의 사진 찍기 행사'라는 조롱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지방정부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의 태생적인 한계다. 내용이 무엇이든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라야 지속성을 갖고 취지를 살려 나갈 수 있다. 시민들을 들러리 삼아 정치인이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식의 프로젝트는 보여주기식 행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달빛 동맹'이 이른바 '민관 거버넌스'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광주와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방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마중물'에 그칠수록 좋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과거 김대중 정부의 문화 정책의 원칙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5월의 마지막 날, 꺼져가는 '달빛 동맹'의 불씨를 되살리는 대구 시민들이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아왔다.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을 기억하려는 40여 명의 평범한 대구 시민들이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로, 초등학생부터 50대까지 섞여 있었다.
대다수는 광주가 처음이라고 했다. 광주 대구 간 고속도로가 정비되면서 두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게 됐지만, 해묵은 지역감정에 따른 정서적 거리는 아직도 상당하다. 5.18의 진실을 좇아 과거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았던 몇몇 이들이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손을 이끈 것이다.
고마움과 반가움에 버선발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개인적으로, 대구나 경북에서 왔다고 하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 나가고 있다. 얼추 20년 가까이 주말을 이용해 5.18 사적지 해설을 돕고 있지만, 대구와 경북에서 온 방문객들을 만난 기억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이 광주를 찾아온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5.18을 위해 태어난 사람' 윤상원 열사의 생애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불꽃 같은 삶을 연결 지어 기리기 위해서였다. 2년 터울로 나이조차 엇비슷한 두 사람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의인이다.
공교롭게도, 윤상원은 광주에서 태어났고, 전태일의 고향은 대구다. 기실 '광주의 전태일'이 윤상원이고, '대구의 윤상원'이 전태일이다. '닮은 꼴 청년'이라는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빛바랜 '달빛 동맹'의 취지를 되살리고 교류를 넓혀가자는, 깨어있는 광주와 대구 시민들의 목소리다.
그들은 서른한 해 윤상원의 짧은 생애를 되짚어보고 싶어 했다. 5.18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게 된 동기를 궁금해했다. 계엄군에 의해 도청이 함락된 5월 27일 그 새벽, "오늘은 패배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할 것"이라던 그의 사자후가 발길을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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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시민들이 5.18 자유공원 내에 있는 옛 상무대 영창에 들러 당시 폭도로 내몰려 고문당하던 시민들의 상황을 체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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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지나 대학생 윤상원이 오갔을 야트막한 언덕을 걸어 올랐다. '박관현 언덕'으로 명명된 오르막이다. 박관현은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직전 사흘간 '민족 민주화 대성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불의한 시대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평범한 법대생을 민주화 투사로 거듭나게 했다.
박관현은 5.17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타지로 피신했다가 붙잡혀 광주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숨졌다. 그는 호남 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의 '강학'으로서 윤상원과 인연을 맺었다. '강학'은 가르치고 배운다는 뜻으로, 야학 교사를 그렇게 불렀다.
윤상원이 다녔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은 '박관현 언덕' 끝에 있다. 건물의 앞마당 이름은 '윤상원 정원'이다. 생각에 잠긴 듯 두 주먹을 괴고 있는 그의 두상 양옆으로 5.18 당시 그와 동료 시민들의 증언을 새긴 빗돌이 늘어서 있다. 글들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된다. 건물 안엔 '윤상원 홀'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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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불야학'이 자리한 터엔 옛 건물의 벽체만 보존되어 있다. 현재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천동 성당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광천동 시민아파트가 이웃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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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서려는 대구 시민들과 '들불야학'의 자취가 남아있는 광천동 시민아파트를 찾았다. 그가 광주로 돌아와 정착한 보금자리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하나뿐인 목숨과 기꺼이 맞바꾼 그의 결기가 이곳에서 잉태됐다.
'학출'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영세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그는 이곳에서 박기순 열사와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박기순은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대학에서 제적된 상태였고, 윤상원과 함께 '들불야학'을 이끌게 된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윤상원의 '나이 어린 스승'이었다.
박기순의 죽음으로 노동해방과 민주화를 향한 윤상원의 의지는 더욱 벼려졌고,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는 동기로 작용했다. '들불야학'의 두 강학은 죽은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세계 최초의 '영혼결혼식'이었고, 이때 불린 노래가 저 유명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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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시민들이 윤상원이 광주로 내려와 살던 광천동 시민아파트를 답사하고 있다. 건물의 노후화로 방문을 위해선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 평상시에는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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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광주 시민들이 대구를 찾아갈 차례다. 현재 대구에 전태일의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지만, 문제 될 건 없다. 광주의 윤상원을 통해 전태일을 떠올렸듯, 대구의 전태일을 통해 윤상원을 떠올린다면 그걸로 족하다. 부디 두 '닮은 꼴 청년' 윤상원과 전태일을 통해 흔들리는 '달빛 동맹'이 굳건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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