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맹, 자신의 역할 다해야"…한국에 방위비 청구서 흔들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중국은 아시아에서 지배적 국가(hegemonic power)가 돼 지역을 지배하려 한다”며 “미국은 공산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재설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등을 겨냥해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외교를 경계하며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6·3 대선으로 출범할 새 한국 정부의 외교 좌표를 설정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 전략 목표…“공산 중국의 침략 저지”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은 인도·태평양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어 물러날 수 없고, 여기 머무르기 위해 왔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우크라이나·중동으로 분산시켰던 미국의 국방 역량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인·태 지역에 집중할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안보전략의 재설정 목표가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침략 저지”에 있다며 “중국이 대만을 정복하려는 시도는 인·태와 전 세계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막대한 군사력 증강, 무력 사용 의지로 이 지역의 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것을 드러냈다”며 “중국이 가하는 위협은 현실이고, 임박했을 수 있다”고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어 “우리는 중국과 충돌을 추구하지 않지만 이 중요한 지역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이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태 지역에서 동맹에 기초한 안보 노선을 지속할 뜻도 분명히 했다.
“북·중 위협에도 국방비 덜 낸다”
중국의 위협을 막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은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이었다.
그는 “아시아 동맹국들도 스스로 신속히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쓰겠다고 약속했다”며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더 강력한 (중국의) 위협에 직면한 아시아 동맹국이 국방비 지출을 덜 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상 한·일 등 지역 내 동맹국들이 최소한 나토에 적용한 새 가이드라인인 GDP의 5% 수준으로 방위비를 써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국방예산은 GDP의 2.8% 수준이다. 만약 이러한 압박이 가해질 경우 한국은 주한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 1조5192억원에서 100억 달러(약 13조원)로 10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에 더해 추가적 부담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 속 ‘안미경중’ 경고
헤그세스 장관은 여기에 더해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국방 협력을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유혹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대중 경제 의존은 긴장 또는 갈등의 시기에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을 심화시키고 결정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사실상 미국과 중국 중 선택을 강요한 의미에 가깝다. 동시에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의 노선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경우 안보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경고로도 해석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인·태 지역의 통합 방공 및 미사일 방어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는 문제와 연결될 경우 이 역시 중국과의 격한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봉합 과정에서 이른바 ‘사드 3불(사드를 추가배치 안 하고, 미국 MD 및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의사를 밝혔고, 중국은 이를 국가 간 합의 또는 약속이라고 주장해왔다.
“주한미군 감축 심각하게 검토”
한국의 계산은 보다 복잡하다. 미 당국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4500명을 감축해 괌 등 역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한다는 관측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조지타운대 교수)는 CSIS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미 국방부와 군에서 심각하게 검토 중인 문제라고 본다”며 주한미군의 감축은 북한의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차 석좌는 “(4500명이 감축되더라도) 약 2만명의 병력이 여전히 주둔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유지해 북한의 행동에 대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한다”면서도 “한반도보다 대만 위기 대응으로 대부분 군사력의 초점을 맞추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환은 북한에 좀 더 자신감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신뢰와 억제 측면에서는 적국이 미국의 약속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의 문제가 중요하다”며 “관세부터 안보 약속까지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약속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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