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으로 장보는 사람입니다만, 이거 읽고 마트로 향했습니다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기자]
첨단의 시대에도 대파는 팔리고 마트 셔터는 올라간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앱으로 장보기를 한 손님들에게 배달을 하려고 마트 곳곳마다 동분서주하는 기사님이 많아졌다는 것. 계산대가 줄고 키오스크도 많아졌지만, 그 주변엔 감독하는 직원이 있다. 생필품을 파는 곳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휴대폰으로 장 보는데 익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요란한 삶의 현장이 스민 시장을 좋아하면서도 '아침 문 앞 배송'의 편리함에 녹아들었다. 토요일, 새벽 6시쯤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고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면 눈이 떠진다. 문 앞까지 생필품을 배달해 주신 기사님과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집은 5층인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못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을 오르내리면서 그는 몇 번이나 숨을 골랐을까. 계란이 깨진 날, 나는 몇 번이나 인상을 찌푸렸던가. 그날 새벽에 비가 내렸다는 사실은 찰나처럼 떠올렸다가 이내 까먹는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새벽에 일하는 사람의 수고에서 이뤄졌다는 '이해'까지도 말이다.
어쩐지 입으로만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야지 말하는 무지렁이가 된 기분이다. 손톱만 한 반성도 잠시, 나는 마트를 거쳐 문 앞까지 먹거리를 전해준 그들을 '그림자 노동자'로 치부하고 그들이 준 것으로 아침을 차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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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 책표지 |
| ⓒ 이야기꽃 |
이작은 작가가 쓰고 그린 이 이야기는 전 연령대 그림책. 가장 먼저 출근해 매장 셔터를 올리는 점장부터 배달일을 하는 사람, 계산대를 지키는 캐셔, 정육·채소·생선 코너에서 손님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직원들까지 각 사연이 알싸하게 펼쳐진다. 겉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면지에는 마트 홍보 전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필품 그림과 할인 가격이 빼곡하다. 파 한 단 1,500원, 골뱅이 통조림 4,980원… 그 아래 '새학기 맞이 빅세일'을 알리는 문구도 깨알 같다.
조금 촌스럽고 연식이 된 것 같아도 동네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마트에 가면 기업형 마트보다 다양한 식품별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그 사이 수산물 코너에서 장화를 신고 일하는 사람, 계산대에서 토시를 끼우고 일하는 사람 등 작가는 매장 섹션별로 작업복의 모습도 다르게 표현했다. 오랫동안 동네 마트 곳곳을 관찰해 온 덕분이겠다.
본문을 차례차례 넘겨 보자. 청수 마트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하루가 펼쳐지는데, 꽤 화려하다. 염색한 머리의 점장, 노란 야구 모자의 과장, 푸근한 계산대 이모, 젊었을 때 한가닥 했을 것 같은 포스의 채소 담당 이모, 작고 다부진 정육 담당 삼촌. 마트에 가면 별별 코너가 있듯이 그림책 장면마다 별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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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 본문 이미지 중에서(이작은 작가). |
| ⓒ 이야기꽃 |
그 아저씨가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20분 동안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행복하다는 사실도 빠트리지 않는데, 작가가 실제 마트에서 일하는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관찰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노동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정밀함과 세심함이다.
그 세심한 관찰과 상상에서 나온 인물들 가운데 베스트로 꼽고 싶은 인물이 있다. 첫 번째 인물로 뽑는 사람은 청수 마트의 '채소 이모'. "내가 좀 발랑 까졌거든" 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채소 이모는 나물을 다듬는 장면으로 존재감을 알린다.
밥 먹을 때마다 소주를 끼고 사는 것 같지만 채소 이모는 두 아이를 키워낸 가장이자 마트 채소를 안성맞춤으로 진열하는 '이 구역의 고수'. 숏컷으로 표현한 헤어스타일과 오래 쓴 흔적이 역력한 그의 작업 장갑까지 디테일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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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이작은 작가) 본문 중에서. |
| ⓒ 이야기꽃 |
책 속에서 '대리'라고 불리는 아저씨는 새벽마다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출근해 '팔릴 만한' 물건을 골라 트럭에 싣는다. 작가는 그가 마트를 항해 도로 위를 운전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납작한 존재는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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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이작은 작가) 본문 중에서. |
| ⓒ 이야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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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이작은 작가) 본문 중에서. |
| ⓒ 이야기꽃 |
연중무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
그림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아쉽다. "우리 동네 청수마트는 꼭 있어야 하는 마트예요. 그곳에서 꼭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어요"라는 책 속 문장이 가슴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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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청수마트>의 실제 모델인 청수마트 모습. |
| ⓒ 이작은 작가 |
<우리 동네 청수마트>는 제1회 김은미그림책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고 김은미 작가는 성남 모란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곁에서 쓰고 그린 작가로, 첫 책 <이야기를 그려 드립니다>를 출간하고 세상을 떠났다. "작고 낮은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나가는" 김은미 작가의 정신을 기리고자 이야기꽃, 온다프레스 두 출판사가 의기투합해 김은미그림책상을 제정했다. 이작은 작가의 <우리 동네 청수마트>는 제1회 김은미그림책상 수상작이다.
마트 사람들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김은미 작가의 <이야기를 그려 드립니다>도 펼쳐보길 권한다. 빌딩과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결코 투명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첫차를 타는 사람들>, 삶과 노동의 굴레가 우리라는 동심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도 수작이다. 노동에 관한 그림책은 예전보다 많이 출간되는 추세다. 더불어 노동하는 사람의 땀뿐 아니라 그들의 쉬는 시간을 그리는 서사도 풍족해지길 기대해 본다.
온 골목이 선거 유세 현장으로 요란한 시기, 일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요란함이 그리워진다. 이작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마트에서, 시장에서, 이 거리에서 오래 버텨낸 "꼭 있어야 하는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싶은 오늘이다. 작은 사람들의 큰 활력을 만나러 작은 걸음으로 마트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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