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거부하고 아내 외출 막는 80대 남편의 속마음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복지관 글쓰기 수업에서는 글을 꽤 많이 써오시는 분이 계신다. 글은 쓸수록 잘 쓴다는 말처럼, 이 어르신 글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날 글은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내가 먼저 물어봤다.
외출을 꺼리고 사람을 피하는 어르신의 남편
"어, 어르신 혹시 여기 문단 썼다가 지우셨어요? 뭔가가 빠진 느낌이어서요."
어르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선생님 귀신이네. 맞다. 썼다가 이걸 뭐하러 쓰나 해서 뺐지."
그 문단은 어르신보다 10살 많은 남편에 대해 썼던 이야기였다. 지워진 문단이 그 어르신의 조용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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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pa. |
| ⓒ i_m_noble on Unsplash |
"내가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서워졌어요. (남편이) 너무 오래 밥을 안 먹으면 저혈당 온다는 거 알면서도, 자꾸 그러네."
우리는 그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데이케어 센터에 함께 다녀보시라 권해보기도 했다. 말이 나오자마자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하신다.
"나도 말해봤지. 절대 안 간다 하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어르신들 모두 자기 발로 데이케어 센터 가는 사람 없다고, 같이 사는 사람도 살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셨다. 다들 그분의 활동적인 면을 알아서 하는 말이다.
타인의 손을 빌리는 일, 낯선 공간에 자신을 맡기는 일을 모욕처럼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 감정은 고집이라기보다 '버티기'에 가까웠다. 가까운 누군가를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방식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건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갉아먹으면서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날 빠진 문장은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 감정을 대신 짊어진 사람의 이야기였다. 거기엔 고요한 외로움, 사랑보다 무거운 책임이 묻어 있었다.
복지관 수업을 하면서 나이 든 남편이 아내의 외출을 막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일견 고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과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결국 아내까지 고립시키며 두 사람 모두를 점점 움츠러들게 만든다.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남성일수록 의존과 통제가 뒤섞인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내곤 한다.
아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과 남편 스스로 살아내는 힘을 기르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노년에도 혼자 설 수 있는 연습이 결국 둘 모두를 자유롭게 만든다. 불행히도 지금의 70~80세 남자 어르신에게는 어려운 과제인 거 같다.
그 어르신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는 다른 어르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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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희은 님이 하셨던 말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영상이 있었다 |
| ⓒ 성시경 유튜브 |
어르신은 괜히 글로 남겨놨다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그 문단을 지웠다고 하셨다. 나는 글보다 마음 편한 게 먼저라고 했다.
어르신은 내게 말만 그리 하고, 문단 지운 거 바로 알아보지 않냐며 곱게 눈을 흘기셨다. 나는 이마 위로 합장하며 '앞으론 모른 척 하겠습니다' 했다. 나도, 다른 수강생 어르신도 모두 같이 애들처럼 킥킥 웃었다. 나는 몇 번 머리를 조아린 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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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니어 글쓰기 수업 시작 직전 결석 없이 와주시는 어르신께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
| ⓒ 최은영 |
글은 그렇게 다시 쓰여야 한다. 빠진 문장은 돌아와야 하고, 사라진 하루는 회복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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