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의 '노예국가' 망언을 반박한다

이병록 2025. 5. 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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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록의 책으로 세상 읽기...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이병록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경기 여주시 여주시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최근 유튜브 영상에서 퍼진 김문수 후보가 과거 교회에서 한 발언은 충격을 넘어 경악에 가깝다.

그는 대한민국을 "변변한 독립국가를 해본 적이 없는 노예국가"라 깎아내렸고, "이거 우리가 독립운동 열심히 해서 됐다, 그렇게 가르치는 데는 어디 있느냐. 북한의 김일성이 그렇게 가르쳐요"라는 궤변을 내뱉었다. 최근 한 방송사의 보도로 논란이 되자, 김문수 후보 측은 MBC에 김문수 후보 측은 "오래전 기독교 행사 발언"이라며 "전후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특정 부분만 보도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 편집 여부를 떠나, 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한국의 오랜 사대 외교를 이유로 노예국가 운운했지만, 이는 명백한 역사적 무지의 소산이다. 조선은 명·청 제국이 세계 패권을 쥐던 시절에도 실질적 자치를 유지했다. 조공 체제는 중화 질서 내에서의 외교적 형식일 뿐, 국가 주권을 포기한 제도는 아니었다. 한반도의 독립성이 완전히 박탈된 시기는 일제강점기 36년뿐이며, 그마저도 법률상 일본 국민이 되었을 뿐 실질적 평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시대를 '식민지'라 부른다.

오늘날 보수 정치권은 과거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비난하며 미국과의 밀착을 '자주'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친미(親美)'나 '용미(用美)'를 넘어 '종미(從美)', 심지어 '숭미(崇美)'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강대국과의 동맹 속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종속적 위치에 놓으려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자주국방과 자주외교의 정신은 바로 김구의 이글 작전에 깃들어 있다.

이글 프로젝트 – 승전국 자격을 위한 몸부림

'노예국가'라는 표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가장 분명한 사례는 '이글 프로젝트'다. '서울 진공 작전'으로도 불리는 이 작전은 임시정부가 미국 OSS와 손잡고 추진한 독립전략의 절정이었다.

이 작전은 퇴로도, 내부 호응세력도 없는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임무였다. 그러나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는, 전쟁이 끝나기 전 마지막 승부수로 이 작전을 준비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처럼, 세계에 각인시켜 승전국 자격을 얻기 위한 시도였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항복 예비접수'를 위한 국내 진입 작전도 실패하였다. 8월 18일, 미군과 함께 C-47 수송기로 이범석, 김준엽, 장준하 노능서 4명의 정진대를 여의도에 보냈다. 일본군이 진입을 거부하면서 승전국에 가까운 지위를 얻겠다는 마지막 안간힘도 무산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김구의 서한을 격노 속에 반송했고, OSS는 해체되며 이글 팀도 1945년 8월 26일 해산되었다. 한국인 학병들은 훈련 대상이 아니라 포로로 분류되었고, 귀국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범석 장군은 미국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이는 미국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배신했다기보다,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략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미국은 한반도를 식민지의 일부로 간주했고, 한국인을 일본 국적의 피지배민으로 인식했다.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의 실패다.

김구와 문전박대, 이승만과 백악관

김구는 이글 작전에 참여한 사실과 임시정부의 존재를 트루먼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도노반 국장을 통해 거듭 전문을 보냈다. 그러나 트루먼은 도노반에게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미국 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자칭 정부 대표가 우리에게 보내오는 서한을 전달하는 통로로 귀관 휘하의 요원들이 처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지시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은 인맥과 종교적 네트워크를 통해 백악관의 문을 열었다. 그는 미 의회 목사와의 친분을 통해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했고, 미국의 정치 언어로, 종교적 코드로 신뢰를 얻었다. 김구는 목숨 건 결사대로 미국에 다가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승만은 종교인을 통해 워싱턴의 마음을 얻었다.

노예국가가 아닌, 이해받지 못한 독립국가

우리는 노예국가가 아니었다. 우리는 힘이 부족했을 뿐, 주권의식을 끝까지 놓지 않은 독립국이었다. 강대국들은 우리의 존재와 노력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는 단지 무관심이나 배신이 아니라, 전략적 우선순위 속에서 약소국을 향한 '무지'의 결과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무지를 탓하는 것도 아니고, 종속을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낮추지 않겠다는 기개다. 김구는 이글 작전으로 그 기개의 실체를 증명했다. 김문수 후보의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닌, 국가와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실을 왜곡하게 되고, 현실을 왜곡하면 미래를 잘못 설계한다. 정치인은 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이 글이 그 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더파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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