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 공공임대주택의 차이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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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영기 |
| ⓒ 김성수 |
한국은 다르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구 행복주택, 월 29만 원'이라는 전단지를 들고 뛰는 청년들. 빠르게 정보에 접근해야 하고, 공공임대 신청도 일종의 '스펙 경쟁'이다. 경쟁률 150대 1은 양반이다. 정보력, 부모지원, 적절한 소득수준, 운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집주인' 대 '국가', 누가 더 무서울까?
한국에서 집주인은 어떻게 보면 법 위에 있다. 전세 2년 계약했지만, 집주인이 "우리 딸이 들어올 거예요" 한마디면 끝이다. 그래서 한국 세입자는 명절에도 집주인 눈치를 본다. "아이고 사장님, 떡국이라도…" 하며 눈도장 찍는다.
영국에선 반대다. 세입자가 더 세다. 특히 공공임대주택(council house)은 '정부가 집주인'이니 웬만한 일로는 못 쫓아낸다. 심지어 집에 곰팡이가 슬어도, 보일러가 고장 나도, 시에서 나와서 고쳐준다. 늑장 대응이 문제지, 절대 '나 몰라'는 안 한다.
한 번은 우리 동네 임대주택에 사는 할머니가 집 안에 제습기가 고장 나서 시청에 신고했더니, 3개월 뒤 시청 직원이 와서 "이 기계는 너무 오래됐습니다. 교체하겠습니다"라며 새 것을 놔두고 갔다. 느리지만 꼭 책임은 진다.
'낙인' 없는 영국 대 '보여주기식' 한국
영국의 공공임대주택(카운슬 하우스)은 학교 옆, 시청 근처, 일반 주택가 중간에도 골고루 다 섞여 있다. 외관은 수수하지만 전혀 숨기지 않는다. "가난도 죄가 아니다, 주거는 권리다"는 인식이 깊이 깔려 있다.
한국은 다르다. 임대아파트는 '딱 보면 알' 수 있게 분리돼 있다. 복도식 구조, 전용 엘리베이터, 낮은 관리비… 제도는 존재하지만 '낙인 효과'를 감추지 못한다. 1년에 한 번 '청년행복주택 300세대 공급!' 보도자료가 나오면, 그 뒤엔 "신청자 4만 명, 경쟁률 133:1"이라는 자막이 따라온다. 이건 성공일까, 실패일까?
'점수제 대기' 대 '추첨식 접수'의 문화 차이
영국은 점수제로 주거지원 대상을 분류한다. 노숙자라면 1등 점수, 아이가 많으면 가산점, 의료상 이유가 있으면 우선 배정. 줄을 서되, '인생의 고단함' 을 기준으로 서는 셈이다.
한국은 인터넷 접수부터 수십 장의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를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박사논문을 쓰는 느낌이다. 그리고는 '추첨'. 정작 가장 필요한 사람이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같이 사는 동네' 대 '같은 사람들만 사는 동네'
영국의 공공임대는 지역사회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옆집은 임대, 그 옆은 자가, 또 다른 집은 협동조합 주택. 레고 블록처럼 섞여 있어 계층 구분이 어렵다. 한 동네엔 나이지리아 간호사, 폴란드 배관공, 방글라데시 택시기사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산다.
한국은 조용하다. 대부분 한국인이며, 비슷한 연령과 소득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갈등은 적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경쟁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소리 없는 싸움' 속에 사는 기분이라고 할까.
영국의 철학, 한국의 전략
영국은 주거를 '권리'로 본다. 임대주택(Council House)에 들어가면 평생 살 수도 있다. 단점도 있다. '왜 일 안 하는 사람에게 평생 집을 주냐'는 비판도 있고, '구매권'(Right to Buy)으로 매각된 집들 탓에 주택수급이 어려워 지기도 한다.
한국은 '기회의 분배' 와 '효율성'을 중시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일정소득을 넘기면 나가야 하고, 거주기간에도 제한이 있다. 마치 "가난은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제도다.
결론은 단순하다. '사는 곳이, 사는 방식을 바꾼다'
영국에선 오래돼도 편안한 공공주택이 있고, 공동체가 있다. 한국에선 깔끔하고 효율적인 임대주택이 있지만, 치열한 경쟁과 선입견이 뒤따른다.
둘 다 정답은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그래도 바라는 건 하나다. 손주 세대에 이르러서는 '집' 이 경쟁의 결과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 집이 낡았든, 최신식이든 말이다.
언젠가 손주가 생기면 내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예전에 공공임대주택은 어땠어요?"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음, 영국에선 오래됐지만 정 많던 집들이 있었고, 한국에선 아주 멋지고 빠르게 지어진 집들이 있었단다. 중요한 건, 어디서 살든 따뜻하고 안정감 있게 지낼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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