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15세 사춘기 딸과 48세 갱년기 엄마의 요즘 대화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호 기자]
15세 사춘기 딸과 48세 갱년기 엄마 우리는 꽤 잘 통하는 모녀였다. 흔히 말하는 엄마 같은 딸, 딸 같은 엄마였다. 매사 흥이 많고 적극적인 딸,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엄마, 감정표현이 솔직한 딸과 감정표현이 서투른 엄마지만 서로 '쿵짝'이 잘 맞았다.
딸은 학교생활이나 친구 문제에 해결사로 행동하는 리더형이다. 학부모 면담을 가면 매번 듣는 말이 인기가 많고 믿음직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아빠 성격, 말투를 닮은 딸은 판단력도 결단력도 빠르다. 정확한 의사 표현과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제시되어야 설득이 되는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말투가 강해지고 단답형의 말들이 많아졌다.
"싫어." "사줘." "왜 안돼." "내가 알아서 해." "짜증 나." "상관없어." "안가."
그와 반대로 갱년기에 접어든 나는 감정선이 복잡해지면서, 딸의 단답형 말에 화가 난다.
"왜 싫어?" "왜 안돼?" "뭘 알아서 해?"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싫은지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파크가 튀기 직전이다. "쿵" 하고 닫혀 버린 딸의 방을 멍하니 쳐다보면 서러움이 밀려온다. 싫을 수도 있지, 안 가고 싶겠지, 근데 뭐가 상관없다는 걸까?
딸이 표현하는 단어들 사이에서 딸의 감정을 유추해 본다. 하고 싶은 말은 가득 쌓여가지만, 외향적인 사춘기 딸과 내향적인 갱년기 엄마의 표현 방법이 사뭇 다르기에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호르몬이 문제야!
"일어나, 아침 먹어"
"알았다고, 왜 자꾸 깨워."
미동도 없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만 들여온다. 대답이라도 하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손에 쥐고 있던 밥그릇이 달그락 요란한 소리를 낸다.
"나 아침 안 먹어, 늦었어, 머리 감아야 하는데."
"저녁에 씻고 잤으면 좋았잖아, 아직 시간 있으니까 머리 감고 밥 먹어."
"아, 늦었다고."
"먹지 마."
식탁에 차려진 밥을 치워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달래서 머리 감기고, 식탁에 앉아 밥 먹는 동안 젖은 머리를 정성스레 말려주고 밥 먹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머리를 빗겨줬다. 그럴 여유도 없으면 김에 밥을 싸서 입에 쏙쏙 넣어줬을 텐데,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모른 척 출근 준비를 했다. 딸은 분주하고 정신없이 움직이더니 결국 아침을 굶고 등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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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응원봉 |
| ⓒ 김지호 |
불까지 꺼놓고 뭐하냐고 타박하려다 조용히 거실 불을 켰더니 "아, 불 꺼줘" 하며 나를 응시한다. 곱게 화장하고 있는 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입가에 퍼진 미소를 놓칠 리 없는 딸은 곧장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간다.
"엄마 나 마라탕 시켜줘. 매운 국물이 땡겨, 아니다 매운 닭발 먹을까? 엄마도 같이 먹자, 오늘 우리 아들 컴백했잖아."
"내가 모르는 내 아들이 있었냐?"
좋아하는 아이돌 컴백 때문인지 마라탕을 시켜줘서 신이 났는지 딸은 식탁에 앉아 요즘 학교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그 친구한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있는 그대로 다 말하면 상처받을 것 같고, 또 내가 사회성이 떨어져 보일 것 같아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있어' 한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근데 엄마는 나를 이해하니까, 엄마랑 나는 성격이 정말 다른데 잘 맞아."
"너 내 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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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 딸의 행복한 시간 |
| ⓒ 김지호 |
자기 입으로 99% 아빠를 닮았다는 딸은 잘 안긴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크지만, 여전히 내 품을 파고들고 어리광을 부린다. 엄마는 단순해서 좋다는 칭찬 같지 않은 말을 종종 하지만, 요즘 부쩍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문구를 따라 쓴다. 빼곡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노트를 자랑하며 안방 침대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랑 같이 필사하자고 하면, "싫어"로 응수했던 딸이 어느날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좋은 문구에 색깔을 입히고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하자고 다그쳤을 때는 저만치 멀어져 남처럼 행동하더니, "안 먹어", "상관없어" 그 말들은 같이하고 싶지만 어색해서 방법을 모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감정을 숨기기보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딸이 고맙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딸의 외향적인 모습이 버거웠다가도 어느 순간 흐뭇하다. 갱년기 엄마도 사춘기 딸도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라 혼란스럽지만, 함께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감정 친구가 되어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향적인 엄마의 갱년기와 외향적인 사춘기 딸의 감정 표현이 묘하게 닮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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